[경제시평]정문건/IMF 극복 경험 되살리자

  • 입력 2001년 8월 20일 18시 28분


하반기 들어서도 세계경제는 당초 예상과 달리 더욱 악화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들의 경제성장률은 이미 상반기에 정체 수준으로 급락하여 이들의 경기상황은 단순한 조정이 아닌 침체로 단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주도국 경제의 어려움이 개도국으로 파급되면서 올해 전세계 경제성장률도 아시아의 외환위기로 극심한 침체에 빠졌던 98년 수준을 밑돌 전망이다. 세기 말 신경제를 주도했던 미국 정보기술(IT)산업의 거품이 꺼지면서 기술혁신과 자본투자에 기초한 미국의 신경제도 일각의 주장과 달리 전통적인 경기순환의 과정을 답습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최근 10년 동안 쇠퇴하던 미국경제를 화려하게 부활시킨 장기호황에 이어 고통스러운 침체국면이 뒤따를 수밖에 없을 것으로 우려된다.

돌이켜보면 빌 클린턴 민주당 정부는 집권 후반기에 의도적으로 강한 달러 정책을 유지하여 세계 유동자금의 상당 부분을 미국으로 유도하였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한때 아시아의 전통산업에의 과잉설비를 외환위기의 원인으로 몰아세웠던 미국이 유동자금을 바탕으로 정보통신산업의 과잉투자붐을 유발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정보통신시대의 쌀이라 일컬어지는 반도체의 수출단가가 세계적인 과잉공급으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58%나 하락하여 제조원가 이하로 폭락하였다. 이에 따라 한국의 교역조건도 1996년 반도체 가격하락 때보다 더욱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마디로 현시점의 대외여건은 국제적으로 투기자금이 준동하던 금융환경을 제외하고 실물면에서는 오히려 1998년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이라고 하겠다.

상반기에 한국은 이런 상황에 대해 일본 대만 등 경쟁상대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대처해 왔다. 지속되는 교역조건 악화에 대응하여 원화환율이 적절히 조정되어 전자정보 수출기업의 채산성 악화가 적절히 지지되었고 자동차 등 전통수출기업의 실적은 크게 향상되었다. 그리고 연초이래 공적자금의 추가투입과 부분적인 내수 진작책으로 소비심리의 개선과 함께 서비스산업의 성장률은 오히려 점차 호전되었다. 그 결과 상반기에 국내경제는 일본 대만 싱가포르 등의 경제가 정체 내지는 마이너스 성장으로 추락한 데 비해 3% 내외의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하반기에는 강도 높은 경기부양책이 적절히 시행되지 않고서는 국내경제의 회복을 기대할 수 없을 것으로 우려된다. 세계 정보통신산업의 침체현상은 앞으로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여 이들 기업의 실적악화가 지속되는 가운데 경기도 올해에는 크게 반전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더욱이 최근 IT경기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되자 오랫동안 미국 IT투자붐을 가능케 했던 달러화 강세기조가 흔들리는 등 국제 금융시장 환경도 날이 갈수록 불투명해지고 있다. 이렇게 되자 그동안 국내경기를 지지해온 내수 회복세에도 제동이 걸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하반기 경제성장률은 상반기 수준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우려된다.

지금이야말로 1998년 어려웠던 경제상황을 극복했던 경험을 되살려야 할 시점이다. 당시 한국은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공적자금을 적기에 투입하여 기업과 금융기관 구조조정을 착실히 추진하면서 통합재정수지의 적자 유지와 적극적인 저금리 정책으로 자본시장의 기능을 회복시켜 내수 위주로 경기회복을 선도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안타까운 점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졸업한 이후 위기의식이 결여되고 사회 각계의 갈등으로 경제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어렵고 일사불란한 정책 집행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여야의 정쟁으로 구조조정에 필요한 공적자금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렵고 내수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확대와 적기 집행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사회 각계의 갈등으로 획기적인 규제완화도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제라도 경제문제에서만은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 문제 기업의 구조조정을 조기에 마무리하고 거시정책면에서 과거와 같이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을 차질 없이 집행해 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국내경제는 하반기 최악의 국면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세계 IT경기 침체를 극복하고 회복의 전기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정문건(삼성경제연구소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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