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금동근/금감원은 뭘 했나

  • 입력 2001년 8월 19일 18시 22분


1960년대 말 미국 증시에 세 명의 젊은 펀드매니저가 혜성처럼 등장했다.

이들은 ‘고고펀드’라는 이름의 펀드를 운용하면서 서너 종목에 집중 투자하는 방식으로 높은 수익률을 올리며 단숨에 주목을 끌었다. 투자자들이 몰려들었고 이들은 승승장구하는 듯했지만 불과 몇 년 뒤 경기가 침체하자 이들의 펀드는 모조리 청산되고 말았다. 몇 종목에만 투자하다보니 그 중 한두 기업만 쓰러져도 펀드가 치명상을 입었던 것.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의 증권감독위원회(SEC)는 ‘동일 종목에 펀드 자산의 10% 이상을 투자하면 안 된다’는 ‘10%룰’을 만들었다. 위험을 분산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투자자 보호장치를 만든 것이다.

19일 금융감독원은 외환위기 당시 ‘10%룰’을 어기며 대우채를 과다 편입해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준 한국투신에 대해 손해를 배상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번에 문제가 된 두 펀드 가운데 한 펀드는 대우채를 무려 25%나 편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투신측은 “비상시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하지만 15%포인트나 초과 편입한 걸 보면 ‘10%룰’을 염두에 두기나 했는지 의심이 간다.

감독당국인 금감원도 자성해야 한다. ‘10%룰’이건, 어떤 규정이건 제대로 지켜지는지 늘 감독하고 바로잡아야 할 기관이 투자자의 문제제기가 있기 전까지 이를 묵인, 조장해왔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19일의 손해배상 결정에 대해 펀드간 물타기나 한도를 초과한 투자 등 투신업계의 오랜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반응이다. 규정을 어기면 곧바로 소송이 제기되는 선진국에 비해선 늦었지만 ‘권리의식’으로 무장한 투자자들이 잘못된 관행을 분쟁조정이나 소송으로 바로잡는 분위기가 생겨 다행이라는 것.

대우 사태 당시에야 한국투신이나 감독당국이 편법으로 문제를 미봉하는 쪽이 쉽고 편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원칙에 어긋난 선택은 훗날 반드시 그 대가를 요구하게 마련이다. 서로의 이해가 엇갈리는 경제문제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금동근 금융부>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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