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오세정/특허권과 빈부 차

  • 입력 2001년 8월 19일 18시 22분


최근 이동통신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기술 특허료 문제로 한국 기업과 미국의 퀄컴사간에 분쟁이 일고 있다는 소식이다. 한국에서 CDMA 서비스가 상용화되면서 큰 이익을 본 퀄컴사가, 중국에서는 그 기술을 한국의 절반 수준 로열티만 받고 제공하겠다는 계약을 해서 국내 기업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을 로열티 최혜국으로 대우하겠다는 협정에 위배되며, 특히 한국 기업의 국제 경쟁력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것이라는 주장이다.

▷지식기반 사회가 도래하면서 우리가 사용하는 제품에서 특허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 정보통신 산업뿐만 아니라 항암 치료제 등 바이오 산업에서의 특허료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얼마 전 우리 나라에서도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의 약값을 내려달라는 시위가 있었지만, 에이즈가 창궐하고 있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다국적 제약회사의 약값이 현지 환자가 부담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며 3월 일방적으로 약값을 인하하는 법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이렇게 첨단 약값이 비싸지는 원인이 지나친 특허료 때문이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미국에서도 점차 힘을 얻고 있다.

▷특허제도는 생활에 도움을 주는 연구 성과에 경제적 보상을 함으로써 연구를 촉진시키는 순기능이 있다. 하지만 특허료는 제품 값에 고스란히 반영될 수밖에 없어 가격을 높이기 마련이다. 14세기경 특허제를 처음 도입한 영국에서도 특허권의 남발로 물가가 앙등하는 등 심각한 부작용을 겪었고, 17세기에 의회에서 조례를 제정하여 전매특권의 범위를 엄격히 제한한 일이 있다. 당시에는 생필품을 특허 대상에서 제외해 서민 생활을 보호했지만, 21세기에는 첨단 의약품, 통신기기도 일반 시민들에게 필수품처럼 느껴진다.

▷지난 수세기 동안 질병을 퇴치하고 생산력을 증가시켜 서민의 생활수준 향상에 크게 기여해온 과학기술이, 이제 다시 경제력에 의한 차별과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음은 아이러니다. 특허권의 추구도 어느 단계에서 ‘이제 그만’이라고 할 수 있는 금도(襟度)가 필요하지 않을까.

오세정 객원 논설위원(서울대 물리학부 교수)sjoh@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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