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인문학이 가야할길 '디지털시대의 문화 읽기'

  • 입력 2001년 8월 17일 18시 23분


◇ '디지털 시대의 문화 읽기'/ 최혜실 지음/ 349쪽 1만4000원 소명출판

과거의 인문학은 적어도 당대의 보편적 현상과 그 구체적 발현이라 할 문화 일반에 대해 적어도 시의 적절한 입장을 개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른바 멀티 미디어라는 새로운 매체가 각 문화-예술 영역들의 견고한 울타리를 허물어 가는 지금, 오늘의 인문학은 적절하고 발빠른 대응을 못하고 있는 듯하다.

새로운 미디어의 장점은 (시공간 이동의) 속도와 유연성, 개방성에 있다. 무엇이든 받아들이고 녹여내며, 다르게 변형시키고, 통합하며 겹쳐놓을 수 있는 이 새로운 매체는 기존의 예술이 맞닥뜨리고 있던 시공간의 한계에 탄력적으로 대응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인문적 성찰을 개진하는 데는 역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역으로 보면 오늘날처럼 인문학이 다양한 사유의 질료와 풍요로운 고민거리를 마주한 적이 없었다. 현 단계에서 우선 풀어내야 할 과제는 현상진단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저자의 이전 저서인 ’모든 견고한 것은 하이퍼텍스트 속으로 녹아든다’(생각의나무, 2000)와 함께 이 분야 연구에 하나의 시론이 될 수 있다. 저자는 실로 다양한 영역에 대해 관심의 촉수를 들이대며, 인문학적 담론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저자는 먼저 이 시대의 문화적 토양과 지형도로서의 탈 근대적 상황이라는 커다란 틀을 다시 규정해 본다. 그 다음은 멀티미디어 시대의 구체적 문예창작과 전달 및 수용 양상과 서사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모색이다. 그리고 그런 환경하에서 문화의 소비뿐만 아니라 새로운 생산의 주체로 부상하고 있는 대중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 작가-예술성의 패러다임 변모를 문화사적으로 성찰한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 그 인식론적 깊이와 폭에 있다. 멀티미디어 매체 환경의 속성은 영역간 경계 허물기와 가로지르기라는 절합성(絶合性), 그리고 새로운 ‘트기’의 배태에 있다. 따라서 그 궤적을 추적하는 것은 자연스레 다양한 영역에로의 관심 표명으로 이어지겠지만, 한편으론 그 때문에 이 책이 다소간 산만해 보이기도 하고 심도면에서 약간 울퉁불퉁한 부분도 눈에 띈다.

하지만 현상 진단과 문제제기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현상황에서 이 책이 담아내고 있는 여러 문제들은 연구자들에게 우선 도전이 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하다. 앞으로 저자가 얼마나 더 깊이 고민하고, 나아가 이 책에서 던진 화두들에 대해 하나씩 좀더 깊이 있는 성찰의 결과들을 쏟아놓을지 기대가 크다.

서정남(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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