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중년부부의 사랑 '천국에서 온 케이크'

  • 입력 2001년 8월 10일 18시 26분


▼'천국에서 온 케이크' 프랜시스 박 지음/노진선 옮김/2Mbyte 3000원/에버북닷컴▼

‘두 개의 고독이 합쳐진다고 해서 하나의 행복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중년 부부가 겪는 회색빛 로맨스는 ‘밑줄 긋는 남자’(열린책들)의 한 구절을 떠올린다. 두 주인공은 깊은 삶의 ‘흉터’를 간직한 채 살아간다. 여자 제빵사인 조(Jo)는 아버지의 자살을, 그녀의 남편인 할인마트 매니저 몽크(Monk)는 전처 아들의 죽음을.

두 사람은 ‘자살문제 상담전화’에서 들은 상대방의 음성을 ‘천국의 목소리’로 여기고 결혼했다. 하지만 어두운 기억은 어느새 새로운 삶의 뒤꿈치까지 쫓아와 서로를 보듬지 못하게 만든다. 가까운 것들조차 따스하게 대하지 못하는 불구의 시간은 결국 자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

조는 새로운 케이크를 만드는데 전력한다. 그것으로 모든 시름이 한꺼번에 사라질 수 있다는 듯. 하지만 그녀 역시 안다. ‘완벽한 케이크가 완벽한 세상을 만들지는 못한다’는 것을. 그래도 마음을 추스린다. ‘하지만 최소한 나로 하여금 완벽한 세상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만든다’면서.

‘험블 어스 케이크(Humble Earth Cake)’는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겉은 가뭄 뒤의 땅처럼 바짝 말라있지만, 안은 비 온 뒤의 땅처럼 촉촉한 케이크. 중년의 사랑이란 함께 삶의 무게를 지고 인생의 산에 오르며 흘리는 땀과 같은 것이란 깨달음을 전하는 ‘천국의 선물’이다.

비평가의 시선으로 보자면 이야기는 여느 로맨스처럼 단순하다. 그러나 머리로 읽는 줄거리보다 가슴으로 느끼는 감성이 먼저다. 시적인 문장에 후각과 미각을 자극하는 촉촉한 은유들이 스폰지 케익처럼 가슴에 녹아든다. 그 맛은 톡 쏘는 콜라 맛보다는 은은한 숭늉 맛에 가깝다.

e북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프랜시스 박은 동화작가로 출발한 한국인 2세다. 일러스트레이터인 동생 진저 박과 함께 꾸준히 동화책을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조처럼 그녀 역시 워싱턴에서 케이크 가게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그녀가 1998년 미국에서 발표한 첫 장편소설인 이 작품은 현지 평단이나 언론에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올해 초 이민 2세의 아픔을 그린 ‘여동생이 클레오파트라 달이었을 때’를 발표해서 적지 않은 화제를 일으켰다. 노진선 옮김, 원제 ‘Hotline Heaven’.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