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서울교육청 자립형 사립고 도입반대 파장

  • 입력 2001년 8월 9일 19시 13분


교육인적자원부가 학생 선발권과 교육과정 운영 자율권을 갖는 ‘자립형 사립고’를 내년부터 도입하려는 방침에 서울시교육청이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 교육개혁 정책에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교육부의 영재학교 도입 등에 대해서도 반기를 들어 마치 중앙정부와 지방교육자치단체간 힘 겨루기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교육부는 9일 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했으나 뚜렷한 해법이 없어 부심하고 있다.

▽자립형 사립고·영재학교 반대〓교육부는 건학 이념이 분명하고 재정 자립도가 높은 고교 중 시도별로 1∼4개씩 30개 고교를 자립형 사립고로 선정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유인종(劉仁鍾) 서울시교육감은 9일 기자회견을 갖고 “외국어고 과학고 등 특수목적고가 당초 설립 목적과 달리 입시 명문화한 것처럼 자립형 사립고는 교육을 파행적으로 만들 우려가 있어 반대한다”면서 “일부 계층이 요구하더라도 허용할 수 없으며 사립고교가 자립형 사립고를 신청하더라도 접수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교육의 다양성과 선택권은 공교육 여건을 개선하고 프로그램을 다양화해 해결해야 한다”면서 “자립형 사립고를 일단 시작하면 해집단이 생겨 문제점이 있더라도 고치기 힘들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영재학교에 대해서도 반대하고 있다. 유 교육감은 영재학교가 생기면 입학 경쟁이 과열된다는 논리를 펴며 대신 영재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 이올해 서울과학고 한성과학고 등에서 중학생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무리한 추진〓이 같은 마찰은 교육부가 시도교육청을 비롯해 각계의 의견을 충실히 수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또 교육부는 당초 2003년부터 20개교 이내에서 자립형 사립고 시범학교를 선정하려 했으나 일정을 앞당기고 대상 고교 수도 크게 늘렸다.

교육부는 지난해 5월 공청회 등을 거쳤지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교육학부모회 등 반대측 논리를 설득하지는 못했다.

전교조 등은 “자립형 사립고는 과외를 부추겨 사교육비 부담과 입시 과열을 조장하는 등 귀족학교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며 “교육계의 지형을 바꿀 중대한 사안을 결정하면서 교육감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는 게 증거”라고 비판했다.

▽법률적 논란〓교육부는 자립형 사립고 선정 절차와 관련, 시도교육감이 희망 학교를 자체 심사해 교육부에 추천하면 학부모 교사단체 등이 참여하는 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대상학교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현행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은 ‘자율학교를 운영하고자 하는 학교의 장은 교육감의 추천을 받아 교육부장관의 지정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교육부는 이 규정을 들어 “조건을 갖춘 학교가 신청을 했는데도 국가 사무를 위임받은 시도교육감이 신청 접수조차 하지 않는 것은 월권”이란 입장이다.

그러나 시도교육감의 추천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교육감이 정책 의지나 철학에 따라 이를 거부할 수도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한국해양대 김용일 교수는 “초중등교육은 교육감이 최고 책임자이기 때문에 법률적으로 교육부가 교육감을 제어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향후 전망〓교육부는 “서울시교육청이 신청을 접수조차 하지 않을 경우 교육청과 학교 사이에 분쟁이 생길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설득하겠다”며 “필요할 경우 서울시교육청에 시정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시도교육청이 중앙 정부의 정책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예산지원 등에서 불이익을 주거나 서울만 빼고 자립형 사립고를 시범 운영하는 방안도 있지만 모양새가 좋지 않아 고민하고 있다.

교육부도 이미 공표한 정책을 거둬들이기도 어려워 자립형 사립고는 ‘반쪽 운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인철기자>inchul@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