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도심의 벌컨포 오발

  • 입력 2001년 8월 8일 18시 37분


엊그제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일어난 벌컨포 오발사고는 인명피해가 없었으니 다행이라는 정도로 넘길 사건이 아니다. 한마디로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군 당국에 따르면 서울시내 모 호텔 옥상 대공진지의 벌컨포 월례점검차 발사시스템을 조작하던 정비운영관(하사)이 모의탄과 실탄을 분리하지 않은 상태에서 격발시스템을 작동하는 바람에 일어난 사고라고 한다. 이 때문에 모의탄 35발에 이어 실탄 17발이 발사됐다는 것이다.

군 당국은 시민 안전을 고려해 1999년부터 도심 배치 벌컨포의 포탄을 발사 후 1.3초 내에 스스로 폭발하는 자폭탄으로 교체했고, 정기점검 시에는 포신을 반드시 남산쪽으로 고정해 놓아 만일의 사고에 대비한다고 해명한다. 하지만 이번 사고에서는 2.4㎝ 크기의 파편이 중구 신당동 주택가에 세워진 승용차 위에 떨어졌다. 만약 시민이 그 파편에 맞았더라면 어쩔 뻔했겠는가.

도심에 배치된 벌컨포는 주로 북한의 후방침투용 비행기 AN2기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AN2기는 저고도로 비행하기 때문에 우리측 레이더가 포착하기 어렵다. 따라서 군의 입장에서 볼 때 도심 고층건물 위에 벌컨포를 배치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인구가 밀집된 도심에 배치된 벌컨포에 대한 안전수칙은 무엇보다 강조돼야 한다. 이번에 사고를 낸 벌컨포는 발사속도가 분당 1000∼3000발에 최대사거리 4.5㎞, 탄두 직경이 20㎜다. 사고가 날 경우 무방비 상태인 시민에게는 치명적인 무기가 아닐 수 없다. 군에서는 하사관이 저지른 한순간의 실수였다고 하지만, 도심에 배치된 살상무기에 대한 안전점검이 이처럼 소홀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군 당국은 이번 오발사고 경위에 대한 감찰조사를 벌여 책임자를 엄중 징계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일은 단순히 책임자 처벌만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도심 내의 주요 군사시설 및 고성능 화기 관리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 및 담당자에 대한 안전수칙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나아가 군은 이번 사고를 전반적인 군 기강을 다잡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얼마 전에는 경계근무 중이던 보초병이 총기를 빼앗기는 일이 있었는가 하면 수륙양용 장갑차가 강에 침몰해 사병 셋이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다. 이런 일들이 혹시 군기 해이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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