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아의 책 사람 세상]인간복제의 암울함

  • 입력 2001년 8월 3일 18시 22분


7월31일 미국 하원이 인간배아 복제금지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한다.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조치라고 환영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암울한 기분이 먼저 엄습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로 인간복제는 의외로 오랜 동안 인류의 상상력에 뿌리박고 있었다는 점이다. 비행기의 발명에서도 볼 수 있듯이 오랫동안 인류가 상상하고 열망했던 것은 결국 이루어지고 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얄궂은 걱정이 앞선다.

인간복제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명한 SF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인 필립 K.딕의 ‘블레이드 러너’(원제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글사랑·1993년) 같은 SF 작품을 우선 상기하게 된다.

하지만 멀리 거슬러 올라가 독일의 문호 괴테의 명작 ‘파우스트’ 2부에도 호문쿨루스라는 작은 인조 인간이 등장한다. 이 인조인간은 16세기 독일의 연금술사 파라켈수스가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는데, 이는 남성의 정자 속에 완전한 인간이 들어있다는 생각과 ‘기존의 금속에서 새로운 금속을 창조해낸다’는 연금술적 사고가 결합해서 낳은 전설이다. 이 호문쿨루스는 태어날 때부터 지성을 가지고 있다니 SF적 상상력으로 보면 기억 이식이 아닐까 하는 혐의도 있다.

유태 전설에 등장하는 돌로 된 인조인간 골렘이나 나관중의 ‘삼국지’에 등장하는 제갈량의 목우유마(木牛流馬)는 무생물에게 영혼을 부여하고 무생물을 인간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상상, 즉 인공지능이나 로봇의 모태가 된 상상력을 깔고 있다면, 호문쿨루스는 유전 법칙이 알려지기 전에는 가장 인간복제에 가까운 상상력을 보여준 전설이다.

둘째로 인류 역사상, 어떤 행위를 금지하는 법안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곧 그 행위가 횡행한다는 것을 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1976년에 벌써 인간복제가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는 책도 있다. 데이비드 로비크의 ‘복제인간’(사이언스북스·1997년)은 ‘허구인가 사실인가’라는 도발적인 제목을 달고 1976년에 대리모를 이용한 복제 아기가 태어났다는 내용을 논픽션 형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생물학에는 문외한이므로 이것이 단순한 소설인지 아니면 ‘논픽션’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이미 인간복제에 필요한 기술은 모두 갖추어졌다는 마당에 과연 법으로 금하는 것이 얼마나 효력이 있을까 하는 걱정을 더해주기에는 충분한 책이다.

허구는 허구로, SF는 SF로 끝났으면 좋겠지만 인간의 상상력은 끊임없이 허구였던 것을 현실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복제만큼은 지킬 선을 지켰으면 좋겠다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진 희망일 것이다. 인간복제까지 하지 않아도 인간이 존엄한지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하도록 만드는 세상이 아닌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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