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남녀차별이냐 구별이냐

  • 입력 2001년 7월 22일 18시 48분


남녀 ‘구별’인가 ‘차별’인가.

4월 광주의 한 여중생이 출석번호를 매길 때 남학생은 1번부터, 여학생은 21번부터 시작하는 것은 남녀차별이라며 여성부에 시정신청을 냈다.

이에 대해 여성부 남녀차별개선위원회에서는 출석부의 남녀구별은 차별적 성격이 있다며 시정을 권고(본보 6월21자 A31면 보도)했다. 해당 학교는 내년 1학기부터 이름의 가나다순으로 출석번호를 매기겠다고 밝혔다.

과거에는 별 생각 없이 당연한 것처럼 대해 왔던 우리 사회의 각종 남녀 ‘구별’현상들에 대해 최근 ‘차별’이라는 주장이 광범위하게 제기되고 있다. 주로 여성측에서 나오는 이 같은 문제제기는 때로 남성들의 반발과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구체적 사례〓지난달 한 여중생은 자신이 지원했다가 낙방한 남녀공학 사립학교가 정원수를 미리 남학생 100명, 여학생 80명으로 정해놓은 것이 남녀차별이라며 여성부에 진정했다. 여성부는 이 사례가 성차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조사중이다.

각종 시설에 설치된 남녀 화장실에 대해서도 차별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립환경연구원의 ‘공중화장실 시설 및 사용현황’에 따르면 여성들의 화장실 사용시간이 남성의 1.6배가 된다는 것.

이에 따라 각종 공공건물에 설치된 화장실 수 역시 여성화장실이 남성화장실에 비해 1.6배가 돼야 공평하다는 주장이다.

서울대 사범대 조교 이진주씨(28)는 “아직도 공공건물 일부 층에는 남자 화장실만 있어 여성들이 아래위층을 오르내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명백한 남녀차별이며, 더 나아가 화장실 체류시간이 긴 여성과 남성의 화장실 수가 같다면 이 역시 불평등”이라고 말했다.

강원도 모대학 여교수들은 99년 여성개발원의 ‘한국형 남녀평등 의식검사’라는 보고서에서 “찻잔이나 컵을 씻을 수 있는 배수대가 여교수 화장실에만 있어 결국 교수회의나 남녀 교수들 모임 전후에 차를 나르고 뒤처리를 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여교수들의 몫이 됐다”며 여기에도 남녀차별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고교생들의 제2외국어 선택에도 차별적 요소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여성개발원이 최근 전국의 95개 일반계 고교를 뽑아 조사한 결과 42%에 달하는 학교가 성별에 따라 제2외국어를 선택하게 하고 있었다. 즉 여학생들은 ‘여성스럽고 부드러운’ 프랑스어를 선택하게 하는 반면 남학생들은 독일어나 중국어를 택하게 한다는 것.

지방자치단체 조례나 정책 관련자료에서도 남녀차별적 용어가 빈번하다는 지적이 있다. 예를 들어 시군 소재 여성회관의 기능을 명시한 자료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부녀자’라는 용어는 ‘한 남자의 아내’라는 뜻으로 여성을 독립적인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차별적 용어라는 것이다.

▽전문가 등의 의견〓한국여성개발원 김양희(金良姬) 수석위원은 “남녀평등이 더 이상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보다 구체화되고 있다”며 “자칫 트집으로 오해될 수도 있겠지만 ‘의도적 차별’이 아니더라도 적극적인 문제제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남녀차별 관련 문제제기가 현실을 무시한 선언적 구호에 치우치거나 지나치게 민감한 것들도 없지 않아 특히 직장분위기를 경직되게 만드는 부작용을 부르기도 한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박종헌(朴鍾憲·31)씨는 “남녀차별에 관한 문제제기가 남녀평등을 생활 속에서 구현하자는 흐름으로 가는 것은 좋지만 일부 주장은 현실에서 받아들이기에 무리한 것들도 있어 오히려 남녀관계를 적대적으로 만드는 경향도 있다”고 말했다.

<김정안기자>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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