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러브 스쿨]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

  • 입력 2001년 7월 19일 18시 41분


시험처럼 싫은 게 세상에 또 있을까. 누군가로부터 자신을 평가받는다는 것, 비교당한다는 것, 그것처럼 기분 나쁜 것도 없다. 오죽하면 ‘날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라고까지 했을까.

그렇게 싫어하는 시험을 교사는 마구 낸다. 중간고사에, 기말고사에, 또 모의고사다, 실력고사다, 요즘은 수행평가까지 있고, 여기에 성의있는(?) 교사는 쪽지시험까지!

그래서 학교는 시험보기 위해 다니는 곳이요, 아이들 세계에서 ‘시험에 나오는 것’은 들을 만한 것, ‘시험에 안 나오는 것’은 아예 존재가치를 잃은 것일 뿐이다.

사실 시험은 아이들만 싫어하는 게 아니다. 교사들도 싫어한다. 우선 문제 내는 것부터가 쉬운 일이 아니다. 1, 2분 만에 후딱 풀 수 있는 문제도 막상 만들려면 몇 십 배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공들여봤자 남이 보면 시답지 않고, 좀 참신하다 싶으면 문제에 ‘문제’가 있다며 빗발치는 아이들의 항의에 결국 두손들고 만다.

“좋아, 다 맞게 해주지.” 그것으로 문제가 간단하게 끝나느냐 하면 천만의 말씀. 그 문제 하나 다 맞게 해주려다 나머지 문제들 배점에 변동이 생기고, 원래 정답을 맞춘 아이는 손해봤다며 또 문제 제기. 나중엔 학부모들도 나서 끝내는 ‘시말서’까지 쓰기 십상이다. 그러니 누가 감히 신선한 문제를 만들어 내겠는가.

객관식 문제는 그래도 낫다. 주관식, 이거 정말 골치 아프다. 특히 서술형은 출제보다 채점하느라 머리가 깨진다.

‘똥, 사랑, 붕어, 진실의 네 단어가 반드시 들어가는 한 편의 글을 쓰시오’라는 문제를 냈더니….

“‘똥, 사랑, 붕어, 진실의 네 단어가 반드시 포함된 한 편의 글을 쓰시오’라는 문제가 시험에 나왔다. 참 재미난 문제라고 생각한다”라고 쓴 맹랑한 놈이 나왔다. 몇 점을 줘야 하는건가.

그래도 놈에겐 귀여운 맛이나 있지. ‘붕어빵 먹은 뒤 최진실과 사랑을 나눴다. 아아! 똥 마려!’라고 쓴 놈에겐 대체 몇 점을 줘야하느냐 말이다.

문제가 지저분해 답까지 지저분해지는 것 같아서 이번엔 좀 다른 문제를 냈다. ‘오늘날 교통수단으로 차(車)대신 말(馬)을 사용한다면 어떤 점이 좋겠는가. 좋은 점을 3가지 이상 쓰시오’. 그랬더니….

음주운전을 해도 된다.

접촉사고가 나면 오히려 한 마리 더 생길 수 있다.(?…!)

천연가죽 시트가 공짜요, 공짜!

망가지면 구워먹을 수도 있다.

방구 뽕(?)을 연료로 재사용할 수 있다.(‘방귀’ 맞춤법도 모르냐? 감점 1점!)

운전하면서 공짜로 승마할 수 있다.

회초리로 신나게 화풀이할 수 있다.

U턴을 무지하게 짧은 반경으로 할 수 있다.

당근으로 잘만 하면 주인을 바꿀 수 있다.

애고머니나. 이번에야말로 진짜 문제 잘못 낸 것 같다.

전성호(41·휘문고 국어교사)ohyeah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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