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와 놀아나다]'마에스트로', 왜곡된 남성사회상 드러내다

  • 입력 2001년 7월 6일 14시 23분


남성정장 브랜드 마에스트로가 큰 남자가 되라고 한다. 어떻게?

얼굴에 은빛 가면을 쓴 한 남자가 클로즈업 된다. 눈 주위에만 구멍이 뚫려 있을 뿐 얼굴 전체를 가리고 있다. 저 남자는 뭐지? 헌데 카메라가 주위를 스윽 둘러보자 다른 남자들 역시 가면을 쓰고 있다.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가면무도회라도 하는 걸까.

탁자에 앉아있는 가면의 남자들. 그들은 금속성의 차가운 철가면을 쓴 채 서로 얘기를 나눈다. 뭔가 의논을 하는 듯 조율하다가 한 남자를 흘깃거리며 주시한다. 고풍스러운 문양의 잔을 만지작거리며 탁자의 끝에 자리한 남자는 바로 박신양. 어라, 그런데 박신양은 혼자만 가면을 쓰지 않은 맨 얼굴.

가면의 남자들이 갑자기 모두다 일어선다. 그러더니 한치의 어긋남 없이 일렬로 주욱 정열하여 잔을 높이 쳐들며 외친다. "마에스트로!" 그들은 힘주어 삼세번 복창한다.

박신양은 가면의 남자들의 경배를 받으며 조용히 앉아있다. 마치 그들의 경배가 당연하다는 듯 씩 미소만 지을 뿐. '큰 남자가 입는다 마에스트로' 나레이션이 깔리고 엔딩.

이 광고는 왜곡된 남성사회의 은유다. 어쩌면 왜곡된 남성사회를 자신들도 모르게 무의식 중에 드러내는 걸지도 모른다. 그들이 가진 똑같은 잔은 하나임을 증명하는 표식. 즉, 같은 회사 사람이다. 흑백의 강렬한 화면은 비주얼로는 뛰어나지만 그야말로 남자의 흑과 백 그 명암을 확연히 드러내고 있다.

완강한 철가면을 쓰고 있는 사람들은 회사의 일반직원. 이들은 자신의 표정조차 가질 수 없다. 자신의 본래 얼굴을 가린 채 그저 비슷비슷한 가면의 사나이가 되어 일할 뿐이다. 나이도 얼굴도 어떤 걸로도 자신을 표현할 길이 없고 다른 사람과의 변별력도 불가능하다.

반면 무가면의 박신양은 가장 윗자리에 있는 자를 의미한다. 당연히 그는 웃을 수도 있고 화낼 수도 있는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 게다가 모든 직원들이 서 있을 때 그는 여유롭게 앉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어째서? 그가 권력을 가졌으므로.

마에스트로의 세계는 흡사 군대와 같다. 위아래가 분명하고 삼세번 복창하며 복종하는 남자들. 남자의 카리스마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남자를 사회적으로 압박한다. 우리나라에서 표정을 가지려면 오너가 되라는 강박관념을 심어줄 뿐이다. 누가 가면의 남자가 되고 싶겠는가? 자유로운 박신양을 꿈꾸는건 당연하다.

신사정장이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남자 박신양. 그는 전체적으론 섬세하고 다정한 분위기의 멜로에 어울리지만 힘과 권력의 어두운 면도 갖고 있다. 이 어두움은 멜로를 더욱 빛나게 하는 포석이다. <약속>에서 부하를 거느린 암흑가 보스나 <인디언 썸머>에서 변호사처럼.

그는 외적으론 매끈한 정장이 잘 어울리지만 캐쥬얼에 가까운 남자다. 게다가 여자를 위해 우는 절절한 눈물연기는 박신양을 따라갈 배우가 없다. 그래서 여자들은 그에게 매혹된다. 사회적으로 권력을 가졌으면서 사랑을 아는 낭만적이고 자유로운 이미지로 연출되기 때문에. 한마디로 능력있고 멋지다.

하지만 이 씁쓸함은 무엇인가. 그간 보여준 '곰인형 편'이나 '아들과 함께 떠나는 여행편' 광고들이 빈 껍데기처럼 느껴진다. 속은 기분이다. 부드러운 표정으로 가족을 위하던 한 남자는 회사에 가면 많은 이들을 무표정으로 전락시키는 권력의 권좌에 앉아 있었단 건가.

남자를 위한 광고면서 남자를 소외시키는 이 권력지향의 마에스트로. 이런 광고가 남성사회를 곪게 만든다. 정말 '큰 남자'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재고해보자.

김이진 AJIVA77@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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