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구조조정 3년]K은행 인사과장 "엉뚱한 기준으로 33%감원"

  • 입력 2001년 6월 28일 18시 22분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는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했다.

지난 97∼99년 K은행의 인사부 과장으로 근무했던 A씨(46·현재 지점장). 금융개혁의 회오리 속에서 동료 직원의 33.3%를 직접 솎아내는 일을 맡았다.

“5개 은행이 퇴출 될 때도 ‘본보기’만 끝나면 평화로운 시절이 올 거라고 기대했지요. 그러나 곧 모든 은행의 인원감축이 시작됐습니다.”

처음엔 어느 정도의 인원을 줄일 수 있는지 안(案)을 올리라고 했다. ‘10%의 감원이면 될까….’ 그러나 번번이 퇴짜였다.

“수개월 동안 줄다리기 하며 숨이 막혔지요. 결국 40%를 자르라는 통보가 왔어요.”

파업이 시작되자 속으로는 ‘더 버텨라’고 노조를 응원했지만 파업은 단 하루로 끝났다.

인원 감축은 33.3%. 이젠 수천명을 한번에 어떤 기준으로 잘라야할 지가 문제였다. 한번도 정리해고를 위해 평가한 적이 없었다.

“재산이 있을수록, 부양가족이 적을수록, 기여도가 낮을수록 해고대상이었지만 문제는 아무도 대상자들을 ‘무능한 30%’라고 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어요. 오히려 ‘쟤가 왜?’라고 의아해했지요.”

대상자가 통보된 뒤엔 더 끔찍했다. 누가 나를 나쁘게 평가했는지 알고 싶다며 고과내용을 보여달라는 후배, 머리가 허연 선배가 밤새 울다가 붉어진 눈으로 상담을 요청한 일, 가족까지 찾아와 도와달라고 애원한 일….

“그 때나 지금이나 은행이 방만한 경영으로 부실해졌다고 생각지 않아요. 잘못된 정책금융 때문이지요. 그렇게 획일적이고 급하게 처리하지 않았더라면 상처도 덜했을 겁니다.”

<이나연기자>laro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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