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충식/난민과 난센

  • 입력 2001년 6월 27일 18시 19분


제 나라를 떠나 돌아가지 못하는 난민 문제는 세계의 고민이다. 베이징의 탈북자 가족처럼 형벌의 칼이 기다리는 고향을 피해 이국땅을 떠도는 숫자는 세계적으로 2200만명을 헤아린다. 정치적 종교적 인종적 사상적 이유로 박해를 피해 달아난 피난민 혹은 망명자들. 이들을 돕는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의 역사는 80년이 넘는다. 유엔의 전신 국제연맹 시대부터 난민문제는 20세기의 이슈였던 것이다.

▷국제연맹이 첫 판무관으로 내세운 것은 노르웨이 탐험가 프리드티오프 난센이다. 난센은 젊어서 동물학을 배웠으나 나중에 해양탐험에 몰두했다. 그린란드 북극해를 가로지르는 여러 차례의 목숨건 모험은 많은 탐험가조차 놀라게 했다. 그는 극지 탐험 중 겨울을 나기 위해 돌로 오두막을 짓고 바다코끼리 가죽으로 지붕을 덮어 그 안에서 지내기도 했다. 겨우내 고래 기름을 연료 삼아 불을 지피고 식량은 바다코끼리 고기로 때웠다.

▷난센은 배수진을 친, 퇴로가 없는 탐험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런 초인적인 정신력이 바로 ‘몸 가누기 어려운’ 난민을 돕고, 국제정치 외교분야라는 미답의 땅에서도 우뚝 서게된 원동력이 되었을까. 탐험영웅이 된 그는 노르웨이의 첫 런던주재대사로 임명된다. 그리고 1920년 국제연맹 첫 회의에 노르웨이 대표가 되어 데뷔한다. 거기서 난센은 러시아에 억류된 유럽출신 전쟁포로 약 50만명을 풀어내는 판무관이 되어 협상을 발휘, 포로 석방에 성공을 거둔다.

▷난센은 난민을 위한 신분증을 제창해 국제협약을 유도해 냈다. 이것이 바로 난민의 구명줄이나 다름없는 ‘난센 여권’이다. 이런 공로로 탐험가 난센은 22년 노벨평화상을 받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난민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었다. 제2차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난민은 더욱 늘고, 51년 난민조약같은 구제 장치가 생겨도 그들의 처지는 비참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21일은 공교롭게도 유엔이 정한 제1회 ‘세계 난민의 날’. 갈수록 해결은커녕 부풀어가는 지구촌의 난민문제를 지켜보면서 21세기의 난센을 기대해 본다. 한낱 꿈일 테지만.

<김충식논설위원>seesch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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