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남시욱/그래도 언론은 죽지 않는다

  • 입력 2001년 6월 24일 18시 48분


김대중 정부는 기어코 천문학적인 세금추징금을 언론사에 부과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5056억원이라는 엄청난 규모의 추징금에 대한 언론사별 내용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전체액수의 상당 부분이 정부에 비판적인 이른바 3대 신문에 부과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언론사와 사주들에 대한 고발도 곧 뒤따를 것이며 이들이 줄줄이 사법처리될 조짐이어서 한국의 언론사태는 세계적인 관심사가 되었다.

많은 국민은 이 같은 조치들이 비판적인 언론에 대한 권력의 보복으로 보고 있는 만큼 앞으로 두고두고 논란거리가 될 것이다. 어쩌다가 나라가 이 꼴이 되었는지 통탄스럽다.

현재 한국 신문사들의 연간 매출총액이 1조5000억원 정도에 불과한 사실을 감안하면 5056억원이라는 추징금은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일 뿐만 아니라 해당 신문사에 경영상 엄청난 타격을 주고 몇몇 신문사는 문을 닫기에 충분한 액수다. 세무조사와 별도로 공정거래위원회는 24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해 이중의 타격을 언론사에 주었다. 신문산업도 국가가 육성해야 할 중요 산업의 하나인데 정부는 이 점을 외면하고 일부 언론사에 대해서는 징벌을 하는 듯한 가혹한 태도를 보인 것은 국가경영 차원에서도 이해하기 힘든 조치이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경제불황으로 모든 업종이 불경기에 신음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가장 타격을 받고 있는 분야가 신문산업이다. 현재 한국의 신문사들은 1, 2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적자상태다. 언론산업이 타격을 받아 경영이 제대로 안되면 언론자유가 위협받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정부는 벌써부터 해당 언론사가 추징금을 낼 형편이 안되면 유예해주겠다고 한다. 이것은 정부 스스로 추징금 액수가 언론사의 경영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이번 세무조사의 가장 큰 특징은 조사 대상 23개 언론사가 하나의 예외도 없이 모조리 추징금을 부과받은 점이다. 이에 대해 한국 언론계가 그동안 탈세의 온상이었다고 주장할지 모르나 사실은 국세청이 적용한 잣대가 얼마나 ‘현실’과 유리돼 있는지를 증명하는 것에 불과하다. 모든 사람이 위반하도록 돼있는 그런 기준은 올바른 기준이 아니다. 옛날 군주시대에도 백성들이 어기게 돼있는 법은 법이 아니라고 했다. 아마도 국제사회에서는 한국 정부가 모든 중앙언론사에 대해 무거운 추징금과 과징금을 부과한 것이 토픽이자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국세청이 밝힌 세금 탈루의 예는 기가 막힌다. 신문산업의 현실을 지나치게 무시한 것이다. 20% 이상의 무가지를 접대비로 규정하고 심지어 배달원들에게 비옷을 구입하라고 준 돈까지 접대비로 규정해 ‘소득 탈루’로 몰아붙였다는 보도에는 경악을 금치 못할 뿐이다. 이번 세무조사 결과 발표는 나중에 법정에서 어떻게 판가름나든 우선 액수를 부풀려 발표부터 해놓고 보자는 속셈이라는 일부의 지적이 있다. 그것은 언론계를 부정한 집단으로 매도하고 언론 사주들을 파렴치한으로 몰아가기 위한 언론플레이라는 것이다.

그런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넉넉잡아 2년 정도면 판명될 것이다. 만약 그런 요소가 추호라도 있다면 지극히 위험한 사고방식이다. 정부는 이번 세무조사에 대한 시비의 최종 판가름이 이 정부의 임기가 끝난 다음에 이뤄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미 한국의 언론은 재갈을 물릴 수 있는 단계를 지났다. 이번 세무조사 결과로 한국 언론이 권력 앞에 무릎을 꿇을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물론 권력은 비판적인 언론에 대해 보복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언론을 탄압하는 권력이 훗날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권력자들이 아무리 얄팍한 거짓말로 지능적으로 언론을 탄압하려고 해도 국민은 속지 않는다.

이번 세무조사는 군사작전이라도 하듯 조사요원 1000여명을 130여일 동안 투입해 이뤄졌다. 출발부터 너무도 노골적이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추징금과 과징금에 대해 당사자가 이의를 다는 것은 당연하다. 독자들에게도 알릴 필요가 있다. 이것을 두고 일부 다른 언론사와 심지어 정부기관까지 나서서 매도하고 있다. 그들은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의 결정을 100% 옳다고 전제하고 있는데 과거 탈세사건 추징금이 재판 결과 10분의 1로 줄어든 예는 얼마든지 있다. 이런 사실을 무시하고 무조건 ‘국세청 만세’를 부르는 일부 정권 추종자들과 권력의 나팔수들의 작태 또한 이 시대의 특색이란 말인가.

남 시 욱(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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