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대근/제비와 장마

  • 입력 2001년 6월 24일 18시 45분


컴퓨터는 꿈도 꾸지 못했던 시절에도 일기예보는 있었다. 사물의 변화로 날씨를 예측하고 나름대로 거기에 대비했다. ‘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는 말도 비교적 확률이 높은 그 옛날의 일기예보였다. 제비는 본능적으로 비가 올 것을 미리 알고 그 전에 부지런히 먹이를 확보하려고 땅을 스치듯 낮게 난다는 얘기가 아닌가 싶다. 환경오염 등으로 요즘은 농촌에서조차 제비를 구경하기 힘들지만 옛날 사람들에겐 제비도 생활의 일부였던 셈이다.

▷그 제비가 태풍의 이름으로 등장했다. 며칠 전 필리핀 마닐라 동남동쪽 해상에서 발생한 올 두 번째 태풍 이름이 다름아닌 ‘제비’다. 이 태풍은 중국 동쪽 해안을 따라 북상중이며 25일 오후 북한 청진으로 빠져나갈 것이라고 기상청은 예보했다. 제비는 우리나라 기상청이 국제태풍위원회에 제출한 10개의 태풍 이름 가운데 하나. 태풍위원회는 지난해부터 아시아 14개국이 각자 고유언어로 낸 140개의 명칭을 정해진 순서에 따라 태풍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제비가 우리나라에 직접 피해를 주지는 않았지만 그 제비를 따라 장마전선이 발달하면서 큰비가 내릴 것이란 예보다. 남부와 충청지방에는 지역에 따라 호우경보와 호우주의보가 내려지기도 했다. 90년 만의 가뭄에서 벗어나자마자 이번에는 또 물난리가 밀어닥친 것이다. 남부지방에선 이미 농경지 침수 등의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올해는 눈앞의 가뭄대책에 매달려 제방공사 등 근본적인 수해대책을 소홀히 해 주민들이 더욱 가슴을 졸이고 있다고 한다.

▷수해공포는 비단 남부지방뿐만 아니다. 해마다 물난리를 겪고 있는 경기 북부지역은 말 그대로 무방비 상태다. 상습 수해지역 62곳 가운데 개선공사가 진행중인 곳은 11곳에 불과하다는 보도다. 그러나 그 11곳도 예산부족 등을 이유로 공사가 중단된 곳이 많아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미 180여년 전에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은 ‘수령은 무엇보다 물을 다스리는데 힘써야 한다’고 했으나 우리는 지금도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건 아닌가.

<송대근논설위원>dk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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