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아의 책 사람 세상]이혼, 비난하지 말자

  • 입력 2001년 5월 25일 18시 45분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혼인율은 1970년 이후 최저를 기록했고, 이혼율은 1970년의 10배에 달한다고 한다. 결혼과 이혼에 대한 사람들의 가치관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드러내 보이는 통계이다.

과거 봉건사회에서는 결혼이 개인 대 개인의 결합이 아닌 가문과 신분의 결합이었다. 따라서 남성이 여성을 소박놓거나 배우자와 사별하는 일은 있을 수 있어도 동등한 권리를 가진 주체들이 정식 절차를 밟아 이혼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할 일이었다.

그러나 개항 이후 사랑과 결혼에 대한 가치관은 급속도로 변한다. 기존의 결혼관에 대한 반발은 동경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확산된다. 이 당시 봉건적 결혼과 대립하는 자유연애는 단순히 퇴폐적인 개인의 욕망 추구가 아니라 개화의 일환으로 여겨졌다.

소파 방정환과 더불어 한국 아동문학의 정립에 큰 역할을 한 마해송은 자서전적 산문집 ‘아름다운 새벽’(문학과지성사·2000년)에서 이렇게 말한다.

“세상은 하루하루 개화되어갔고 결혼, 이혼, 연애에 대한 젊은 사람들의 생각은 많이 변해가고 있었다. 내 또래로 이혼한 친구는 많았고 그 중에는 개가한 여자도 많았다. 한동안 고향 사람들의 욕바가지가 되기는 했지만 차츰 그런 일도 남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게 될 것 같이 생각되는 것이었다.” 이것이 1920년대 이야기다.

영국의 사회학자 안토니 기든스는 ‘현대 사회의 성·사랑·에로티시즘’(새물결·1996년)에서 이러한 가치관의 변동을 ‘친밀성의 구조 변동’이라고 명명한다. 인간이 자신의 의미와 정체성을 탐구할 필요가 없었던 전근대 시기에는 탄생과 결혼, 공동체, 죽음 등은 자연적이고 주기적인 사건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근대에 접어들어 자유롭고 주체적인 ‘개인’이 생겨나면서 개인의 자아는 개인이 성찰적으로 기획해야 하는 것이 된다. “이제 섹슈얼리티는 다른 사람과 친밀성에 기초한 관계를 형성하는 수단이며, 더이상 세대를 가로질러 지속되는 불변의 친족 질서에 근거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든스는 이 사태를 비관적으로 보고 있지 않다. 그는 이것이 더 나은 인간간의 관계(relationship)를 추구하는 ‘일상 속의 사회적 실험’이라고 본다. 그래서 그는, 전통 사회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여질 수 없는 동성애 가족이라든지 재조합적 가족(예를 들어 이혼한 남녀가 각기 자신의 자녀를 데리고 재혼한 가족 같은 것)에 대해 긍정적인 눈으로 보고 있다.

익숙하지 않은 것, 새로운 것에 대해 개탄하고 과거를 그리워하기는 쉽다. 그러나 변화의 방향을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그것이 더욱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개인들의 결단이 모여 이루어진 물결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렇게 보면 결혼율의 감소와 이혼율의 증가는 감정적으로 개탄할 일만은 아닐 듯하다.

송경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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