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쿠바 위기 재현해낸 「D-13」

  • 입력 2001년 5월 23일 10시 36분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를 영화화한 「D-13(원제 Thirteen Days)」이 6월2일 뒤늦게 우리나라에 상륙한다.

이 영화는 작품성보다 상징성이 돋보이는 영화. 지난 2월 조지 부시 대통령이 케네디 전 대통령의 유족을 초청해 시사회를 가진 데 이어 4월에는 쿠바 아바나의 혁명기념관에서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과 주연배우 케빈 코스트너가 나란히 관람하기도 했다. 쿠바 위기를 둘러싼 대립의 한 축이었던 러시아(구 소련)에서도 정부 관계자와 미국의 무기 전문가가 참여한 가운데 공개 상영회가 열려 화제를 모았다.

다큐멘터리를 방불케 하는 영화답게 줄거리는 쿠바 위기 13일 동안의 역사적 궤적을 그대로 좇는다.

미국 정찰기가 쿠바의 핵미사일 기지 건설장면을 포착하자 존 F. 케네디 행정부는 즉각 쿠바 주변에 해상봉쇄령을 내리는 동시에 전군에 전투태세 준비를 명령한다.

군 수뇌부는 소련의 지원을 얻은 쿠바의 핵미사일 배치를 도발행위로 간주하고 단호한 응징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케네디 대통령은 인류를 3차대전의 재앙 속으로 몰아넣지 않기 위해 냉정을 유지한 채 후르시초프 서기장의 진의를 알아 내려고 애쓴다.

후르시초프가 KGB 요원을 통해 타협안을 제시했다가 번복하자 군부를 중심으로 한 매파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비둘기파는 궁지에 몰린다. 물론 결말은 역사가 증명하는 대로 3차대전 발발 일보직전에 평화가 찾아오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매번 시한폭탄의 시계가 폭발 직전에 멈추는 통속적인 액션영화보다는 훨씬 극적인 긴장감을 안겨준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미국과 소련, 그리고 미국내 강온파의 대립이라는 두 개의 동심원 형태로 진행됐으나 「D-13」은 미국내 대립에만 주목한다.

케네디의 맞상대인 후르시초프나 카스트로는 목소리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케네디 대통령과 그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 그리고 둘의 특별보좌관이었던 케네스 오도넬이 인류를 3차대전의 위기에서 구해내기 위해 얼마나 영웅적인 노력을 펼쳤는가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노 웨이 아웃」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로저 도널드슨 감독은 「JFK」 「닉슨」 등 미국 냉전사의 이면을 폭로하는 데 천착한 올리버 스톤의 문법을 빌려오긴 했으나 새로운 역사적 해석으로 논쟁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케빈 코스트너 역시 케네디 형제 역과 달리 미지의 인물인 오도넬로 등장해 관객에게 영화적 상상력을 불어넣는 임무를 부여받았으나 기존 이미지의 틀에 갇힌 느낌. 정의롭고 날카롭고 따뜻하기까지 한 인물은 매력은 줄지 모르나 공감을 얻기는 어렵다. 오히려 무명에 가까운 브루스 그린우드가 케네디 대통령의 생전 모습을 연상케하는 표정과 몸짓으로 사실감을 높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러나 3차대전을 막은 공로를 온전히 케네디 형제와 오도넬에게만 돌리는 것이옳은 일일까. 흐루시초프는 과연 3차대전을 일으킬 목적으로 쿠바 미사일 기지를 지원한 것일까.

영화 속에서 소련과 미국의 권력 핵심이 주고받는 제안을 잘 음미해보면 해답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미국은 터키의 미사일 기지를 철수하겠다는 카드를 내밀고 소련은 카스트로 정부의 전복 기도를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당시 밀약 덕분에 카스트로 정권은 미국 CIA 공작에 의해 무너진 칠레의 아옌데 정권이나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정권과 같은 운명을 걷지 않았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포기를 종용하면서도 막강한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에 나서는 요즘 상황이 영화 장면과 겹쳐져 씁쓸한 기분을 자아낸다.

[연합뉴스=이희용 기자]hee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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