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서지문 교수-도올의 방송중단을 듣고

  • 입력 2001년 5월 22일 19시 03분


도올 김용옥의 TV 논어강의에 대해 가장 먼저, 그리고 신랄하게 비판했던 고려대 서지문 교수(영문학·사진). 시중에 도올 논쟁을 촉발시켰던 그는 도올의 방송중단 선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의 글을 싣는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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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哲人'되는 계기됐으면

도올의 ‘논어이야기’ 조기종료 소식을 접하게 되니, 그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일이 없었다면 어떤 느낌일지 모르겠는데, 그를 강력히 비판한 사람으로서 마음이 몹시 언짢다. 처음 비판을 제기할 때는 그가 성인을 왜곡하고 모독하는 것에 너무 분노해서 그의 강의가 당장 종료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 나 때문에 그의 강의가 폐지된다면 내 마음이 너무 괴로울 것 같아 강의가 계속되는 것을 마음 한구석에서는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그리고 찬반 논의가 상당히 전개된 후에는 그가 틀린 해석을 하고 공자를 비하하더라도 듣는 사람들이 그의 해석을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 염려가 많이 줄었다. 그는 논란이 불붙은 직후 심적 타격을 많이 받은 듯했지만 곧 자신감을 회복하고 의기양양하게 강의를 진행했다. 최근에도 포항공대와 성균관대에서 매우 즐겁게 강의하는 것 같아 이런 사태는 전혀 예기치 못했다.

그의 강의에는 많은 문제가 있었는데, 가장 근본적인 것은 공자가 그의 기질에는 너무 안 맞는 성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매우 독창적인 방식으로 공자를 해석해서 적당히 철없고 거칠고 소심하고 결함 많은 인간으로 제시해 친근감을 불러일으키려 한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학자로서 무책임한 자세이고 공자와 유가사상에 부당한 일이었을 뿐 아니라, 이 시대의 병폐를 치유하는 데도 도움이 안 되는 것이었다.

그 외에, ‘논어’와 무관하게 의사는 환자에게 병을 감추고 안심시켜주어야 한다든가, 진선미 중에서 선은 필요 없는 것이라든가 등등 문제성 발언이 많았다. 아마 다른 사람의 비판도 비판이지만 이같은 도로 주워담을 수 없는 자신의 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강의를 종료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 스스로 일생 목표했던 바이지만, 자신이 온 국민으로부터 세상에서 모르는 것이 없고 동시에 무한히 심오한 학자이면서 또한 ‘끝내주는’ 엔터테이너로 열광적인 갈채를 받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그를 조기에 무너져 내리게 했다고 본다. 그의 강의는 너무도 위험한 롤러코스터 경주를 자주 연상시켰다.

그의 말대로 ‘지구 문명사에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혁명적인 강의를 조기종료하고 유랑을 떠나는 그의 심경은 쓰라릴 것이다. 그러나 이 참담한 경험이 그를 진정한 학자, 깊은 철인(哲人)이 되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또 그는 마음만 다져먹으면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는 두뇌와 의지를 가졌다고 믿는다.

자신에 대한 찬양과 열광은 독약이었고 비판은 양약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대중의 인기라든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다든가 하는 따위는 염두에 두지 말고 오로지 도를 수련하는 마음으로 학문을 연마한다면 그는 진실로 후세가 기억할 만한 금세의 학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불러일으킨 동양학에 대한 관심은 그의 퇴장과 함께 많은 부분 스러진다해도 그 중에는 그에게서 촉발받아 동양학을 깊이 탐구해 대학자가 되는 젊은이가 적지 않게 나오리라고 본다. 이 생각이 참담한 가운데서 큰 위로가 되기를 바라고, 도올은 ‘대기만성(大器晩成)’을 부정적 의미로 해석했지만, 전통적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대기만성’을 그에게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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