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자연에 단둘이 둥지튼 노부부의 10년 이야기

  • 입력 2001년 5월 11일 18시 57분


빈 산에 노랑꽃

장돈식 지음

296쪽 9500원 학고재

“비 갠 뒤의 숲길을 걷노라면 언제나처럼 딱새 한 마리가 따라나선다.… 그 녀석은 팔 뻗으면 닿을 거리를 날다가 바닥으로 내려가 먹음직한 파란 벌레 한 마리를 물고는 내 얼굴 높이의 나뭇가지에 앉아 내가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 새의 애정 표시로는 맛있는 벌레를 선물하는 것 이상은 없을 것이다.”

예순 다섯에 수필가로 등단한 저자(81)는 예순 여덟이 되던 1988년부터 치악산계의 한자락인 백운산 품에 들어가 통나무집을 지어 ‘백운산방(白雲山房)’이라 이름짓고는 아내와 단둘이 근 10년을 살았다. 이 책은 그 시절에 썼던 수필들을 모은 것이다.

딱새 한 마리도 그가 이 때 만난 동무들 중 하나다. 암컷과 함께 새끼 다섯을 키우던 그 녀석이 새매에게 암컷을 잃고 혼자 새끼들을 먹여 기르던 때부터 안쓰러워하며 보아왔다. 그래도 녀석은 한 철을 나며 다섯 새끼를 꿋꿋이 길러냈고, 어느 날 새로운 암컷과 함께 노인의 오두막 추녀 밑으로 날아들었다. 노인은 작고 통통한 암컷을 바라보며 녀석이 이 암컷과 함께 다시 알을 낳기를 기대했다.

다람쥐, 꾀꼬리, 왕 토끼, 소나무, 바위, 다래넝쿨, 풀벌레, 그리고 장돈식이라는 노인. 여든이 넘어서도 활발한 창작활동을 벌이고 있는 그는 이미 자연의 일부다.

1997년 원주에서 안동을 잇는 중앙고속도로가 나면서 백운산에 있던 그의 집은 헐렸고, 그는 좀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갔다. 이제 이 책에 담긴 백운산방 주변의 주인공들은 이 세상에 없다. 하지만 그는 다시 자리를 틀은 곳에서 만난 새 동무들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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