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영언/스승의 날

  • 입력 2001년 5월 11일 18시 22분


“선생님, 다시 뵐 수 있다면 그때 그 달걀 한 꾸러미를 꼭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지금은 저를 부끄럽게 하지 않으시겠죠?” 스승의 날(15일)을 앞두고 동화작가 이동렬씨가 40여년 전 초등학교 3학년 때 선생님께 쓴 편지 한토막이다. 집에서 싸준 달걀꾸러미를 들고 선생님댁에 갔다가 선생님으로부터 할머님 반찬해드리라는 말과 함께 돌려 받았던 유년시절의 추억과 선생님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편지다.

▷오래 전에 초등학교를 다녔던 어른들에겐 다들 그 같은 추억이 한두 개쯤은 있을 것이다. 달걀 담배 등 조그만 선물을 들고 선생님을 찾아갔다가 부끄러워 얼굴이 달아오르곤 했던 기억들이다. 그 선생님은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실까. 건강은 어떠실까. 바쁘다는 핑계로 찾아뵙지도 못하는 것이 늘 죄송하기만 하다. 바른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을 잊고 살 수는 없다.

▷1년에 한번 맞는 스승의 날은 그처럼 고마운 선생님의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날이다. 졸업생들은 이제는 퇴직한 옛날 선생님을 찾아뵙는다. 동창생들이 모두 모여 선생님을 음식점 같은 곳으로 초대하기도 한다. 많은 학교에서는 음악회 체육회 등을 열고 선생님들에게 꽃을 달아주며 은덕을 기린다. 불우한 퇴직교사나 병중에 있는 교사들을 찾아 위로하기도 한다. 선생님들에 대한 편지쓰기행사를 통해 참교육의 의미를 되새기기도 한다.

▷하지만 올해 스승의 날은 그렇게 흐뭇한 풍경만은 아닌 것 같다. 상당수의 초등학교가 휴교를 하기 때문이다. 서울의 경우 536개교 중 40.3%인 216개교가 학교문을 닫는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불거지곤 하는 ‘촌지시비’를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고 이런 가운데 사제(師弟)지간의 정을 더욱 깊게 하는 날 오히려 스승과 제자를 만나지 못하도록 하는 세상이 너무 삭막하다. 어쩌다 이처럼 선생님들을 색안경을 쓰고 보는 세상이 됐는지 서글프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학생들을 위해 묵묵히 일해온 대다수의 선생님들이 스승의 날에 오히려 상처를 받을 것만 같다.

<송영언논설위원>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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