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재계 건의 진지하게 검토하자

  • 입력 2001년 5월 11일 18시 21분


3년여만에 부활되는 출자총액제한 제도의 시행을 앞두고 정부와 재계가 대립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 재계가 규제 완화의 목소리를 높이자 일부 정부 부처는 경제가 침체되고 정권의 힘이 빠진 틈을 타 옛날로 돌아가려는 시도가 아니냐며 기업들의 얘기를 진지하게 들으려는 자세를 보여주지 않았다.

경제를 둘러싼 국내외 여건이 어려운 현실에서 정부와 재계간 갈등이 증폭되는 것은 좋지 않다. 정부와 재계가 16일 만나 재계가 마련한 건의안을 놓고 협의하는 자리를 갖는다니 정부는 기업의 규제완화 요구 중에서 합리적인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자세를 보여줘야 할 것이다.

정부는 경제위기 때 도입된 규제 중에 시장원리에 맞지 않고 불필요하게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규제가 적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재벌 규제는 무리한 확장과 경제력 집중을 완화하기 위해 필요하지만 시장의 힘과 기능을 해칠 정도로 과도해서는 안된다. 이번에 전경련이 철폐 또는 완화를 요구하는 40여개 규제개혁 요구안 중에 기업들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것이 있다면 정부는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기업의 출자를 순자산의 25% 이하로 제한한 출자총액제한 제도이다. 이 제도는 재벌총수의 지배력을 줄이고 기업의 문어발 확장을 막기 위해 87년에 도입됐으나 많은 예외규정 등으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다가 98년 없앴다. 그러나 1년만인 99년 법이 개정돼 내년 3월까지 출자한도 초과분을 해소해야 하는 재계로서는 신규사업 진출을 속속 포기하고 기존 사업을 매각해야 하는 상황에 몰려 있다.

경제위기를 겪고 나서 수익성과 미래가치가 없는 업종에는 정부가 등을 떠밀어도 들어가지 않는 현실에서 이 제도는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투자만 위축시킬 뿐이라는 것이 재계의 의견이다. 외국인 기업들은 이러한 규제를 받지 않기 때문에 국내기업들이 역차별을 받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업종에 관계없이 부채비율 200%를 맞추도록 한 것도 이행 기간이 짧아 그동안 부작용이 속출했다.

재계 또한 규제가 생긴 원인에 대한 겸허한 반성 대신에 기업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려는 노력마저 폄하하는 태도로 나와서는 안된다. 전경련은 경제위기를 불러온 문어발 확장, 선단식 경영 등 재벌의 경영방식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완전히 가시지 않고 있음을 염두에 두고 건설적인 대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