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여당이 망치는 공기업개혁

  • 입력 2001년 5월 10일 18시 43분


낙하산인사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 정권의 속성상 후반기로 가면서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짐작은 했었지만 최근의 사례들은 해도 너무한다는 느낌을 준다. 여론이 뭐라고 해도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독선적 의지의 표현인지, 아니면 그만큼 정권의 도덕성이 마비됐다는 뜻인지 알 수 없지만 또한번 정부의 신뢰성에 먹칠을 하고 정치권에 환멸을 느끼게 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4월 이후 임명된 12개 공기업사장 또는 공단이사장 자리 가운데 절반 이상을 전문성과 관련 없는 정치인 또는 군 출신들이 나눠 가졌다. 9일에는 대한주택공사 사장으로 권해옥 자민련부총재를,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에는 민주당 출신 방용석 전 의원을 앉혔다. 이로써 전체 공기업사장 가운데 규모면에서 대체로 상위에 있는 11개자리에 민주당 출신 8명과 자민련 출신 3명이 들어앉았다는 것은 이 정권이 공기업을 정권의 전리품 정도로 여기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3월 정부가 경영능력 운운하며 공기업사장 6명을 전격 해임했을 때만 해도 순진한 국민은 그것을 공기업개혁 의지로 봤다. 결과는 어떠했는가. 여권의 정치인들과 군 출신들에게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한 사전 연극이었다고 비판받아도 할말이 없을 정도로 정부는 후속인사를 통해 국민적 기대를 철저하게 배신했다.

진념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이나 전윤철 기획예산처장관이 그동안 인재풀을 통해 전문성 있는 사람을 민주적 방식에 의해 기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민주당과 자민련 등 공동여당에 얼마나 간절하게 부탁했었던가. 정치권의 공기업인사 개입을 막으려는 현직 장관들의 안간힘이 공허한 소리로 막을 내릴 수밖에 없는 현실에 절망감을 느낀다.

주무부처 장관들의 호소를 묵살하면서까지 그들을 챙겨주어야 할 사정이 있다면 정치권은 국민 앞에 그 내막을 밝히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 도리이다. 왜냐하면 이들 비전문가가 입성함으로써 결국 공기업의 개혁이 어려워진 게 사실이고 그로 인한 해악을 처리하기 위해 경제적 부담을 져야 할 주인공은 바로 국민이기 때문이다.

이번 일은 사장추천위원회나 인재풀 개념처럼 아무리 좋은 제도와 수단이 있다 하더라도 최고 임명권자가 이를 지킬 뜻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여론에 귀기울이지 않는 정부 앞에서는 어떤 종류의 건설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덧없는 일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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