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세계는 금융혁명중-3]"현금? 카드로 모두 OK"

  • 입력 2001년 5월 10일 18시 33분


“이곳에선 지갑이 필요 없습니다.”

전원풍 매력이 돋보이는 지방도시 포스터(미국 캘리포니아주)에 도착한 취재진을 맞이한 비자카드 홍보담당 크리스틴 쿠시너는 구내 식당으로 안내하면서 뜻모를 말을 건넸다.

‘직원들에게는 공짜라는 얘기일까?’

공짜는 아니었다. 흰 거품으로 뒤덮인 카푸치노 두 잔을 들고 계산대 앞에 선 그는 현금을 꺼내는 대신 검지를 쑥 내밀었다. 지문을 통한 간단한 본인확인절차를 거치자 커피값 3.5달러가 그의 계좌로부터 자동 결제되는 것이 아닌가.

▼글 싣는 순서▼
1. 고객이 원하는 대로
2. 텔러(teller)에서 어드바이저(adviser)로
3. '무소불위의 화폐' 신용 카드
4. 종신보험 "인생을 설계해드립니다"
5. '클릭클릭'…왜 은행까지 가나요?
6. 재 테크의 만병통치약, 랩어카운트
7. 간접투자의 해결사, 뮤추얼 펀드
8. '큰손만 오세요, 부티크펀드
9. 세계증시의 통합바람
10. 우리에게도 경쟁력은 있다

“생체인식 기술을 이용한 미래형 결제방식입니다. 수중에 돈이 없어도 물건을 살 수 있죠. 시험서비스 기간이 지나면 가까운 시일 내 상용화될 예정입니다.”

비자카드의 슬로건은 ‘우리의 경쟁자는 현금’.

이는 신용카드의 역사와도 맥이 통한다. 1950년 지갑을 깜박 잊고 고급 레스토랑에 갔다가 망신당한 한 사업가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신용카드는 현금 수표 어음 등 기존 지불수단의 영역을 빼앗으며 가파른 성장을 거듭해왔다. 특히 인터넷 무선통신 M커머스 IC칩 등 새로운 정보기술의 등장으로 현금을 대체하는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현금 없는 세상은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미국에선 대학등록금과 세금도 카드로 낼 수 있으며 주차요금 고속도로통행료 택시요금 등도 잠재적인 카드시장입니다. 차 열쇠고리에 내장된 IC칩카드로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맥도널드 가게에서 차에 탄 채로 햄버거를 살 수도 있습니다. 앞으론 카드가 없으면 살기 힘든 세상이 옵니다. 고객이 원하는 결제수단을 언제 어디서나 제공할 계획입니다.”(비자카드 무선담당 캐럴 오펜랜더 부사장)

신용카드업계는 이제 ‘결제의 편리성’을 추구하는 단계를 넘어섰다. 고객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고객을 관리하는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 시리즈 1회에서 언급된 미국 5대 신용카드업체 중 하나인 캐피털원.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는 이 회사의 카드우편물을 발송하는 공장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의 경우 모든 카드고객이 똑같은 광고자료를 우송받지만 여기서는 고객마다 받는 서비스안내와 광고전단이 다르다는 점. 고객이 어떤 언어를 쓰는지, 소득은 어느 정도인지, 취미는 뭔지, 좋아하는 식당은 어떤 종류인지 등을 일일이 파악해 각 고객에게 꼭 들어맞는 자료를 보내는 것이다. 식도락가에게는 이색 식당의 자료가, 골프광에게는 골프 관련 상품정보가 풍부한 자료가 우편물에 들어간다. 화교에게는 중국음식점이나 실용적인 상품정보가 풍부한 중국어 자료를 보낸다. 이 같은 작업은 고객성향을 구분한 바코드를 통해 자동으로 진행된다. 심지어 같은 내용물을 개별고객이 좋아하는 색깔의 편지봉투에 넣어 보내기도 한다.

정보기술담당 부사장인 마조리 커넬리는 “10여 년 간에 걸친 실험과 자료축적의 결과”라며 “하루에 수십만 통의 우편물을 보내고 그 반응을 점검 기록하면서 고객의 성향을 분석한다”고 말했다. 또 콜센터에 걸려오는 고객의 전화를 꾸준히 분석해 입력한다.

전자화폐는 멀지 않은 시기에 그 형태가 다양해질 것으로 보인다. 상당기간 동안 플라스틱 카드가 주류를 이루겠지만 무선통신 혁명에 따라 M커머스(모바일 상거래)시장이 열리면서 휴대전화를 이용한 결제방식도 널리 보급되리라는 전망. 이 밖에 사이버 카드, 생체인식 카드, 자동차키 카드 등도 이미 도입됐거나 시험단계를 밟고 있다.

‘2004년이면 B2C(기업 대 개인) 전자상거래(북미 대륙 제외)의 40%가 무선기기에 의해 이뤄진다(시장조사기업 가트너그룹)’‘2005년에는 모든 신용카드 거래의 10%가 무선기기로부터 나온다(비자)’ 등 M커머스에 대한 전망은 기대감 수준을 넘어섰다. 비자 마스터 등 내로라 하는 신용카드업계들은 벌써부터 이 프로젝트에 사활을 걸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렇게 전자결제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다고 해서 아무나 신용카드를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샌프란시스코 옆의 대도시 오클랜드 24번가에는 ‘수표 교환소(Check Cashier)’라는 간판을 단 가게가 있다.

우중충한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철창살과 유리상자로 된 전당포 모양의 창구가 있다. 유리상자 안에는 권총을 소지한 청원경찰이 근무, 분위기가 살벌하다. 유리상자 바깥으로는 남루한 차림의 사람들이 20∼30m 가량 줄을 늘어서 차례를 기다린다. 이들은 신용이 없어서 은행에 자기 이름으로 된 계좌조차 열지 못한 사람들이다.

계좌를 열면 은행이 수표용지를 내줘야 하는데 부도수표를 남발할 우려가 있다고 생각돼 아예 계좌개설을 거절당한 것.

이런 곳에서는 한번 신용을 잃으면 평생 동안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한국처럼 정부 주도의신용불량자 사면조치 같은 것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꾼다. ‘무소불위’라는 전자화폐도 ‘신용’을 전제로 기능하는 것이다.

<박현진기자>witnes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