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호재/꼬인 ‘한반도 실타래’ 풀려면

  • 입력 2001년 4월 22일 18시 35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취임 이래 한미 외교 갈등이 심화하자 김대중 대통령은 외교 안보팀을 교체하고 대미 외교관계 재정비를 서두르고 있다. 김대통령이 최근 뉴스위크지 회견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이 북―미 관계의 조율에 좌우된다고 실토한 것은 북―미 관계가 개선되지 않고는 남북관계 진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미 외교문제도 종전과 달리 ‘북한 변수’ 때문에 한미 양국간 이해조정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사실이 새삼 확인된다.

북한의 변화에 대한 이견이 최근 한미 외교갈등과 북―미간 긴장을 고조시켜 한반도 문제 해결이 다시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최근의 사태는 남북한이 1992년 기본합의서에 합의하고도 북한의 핵개발 문제로 ‘제2의 한국전쟁’을 염려할 정도까지 갔던 과정을 상기하게 한다. 그 때도 남북은 평화공존과 교류 협력을 약속했으나 북한의 핵개발 포기에 대한 완전한 투명성 확보를 요구한 미국 때문에 남북대화가 결렬됐다.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과 미국의 북폭 위협, 그리고 ‘서울 불바다’와 ‘전쟁 불사론’에 밀려 평화공존시대를 열기 위한 남북한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

그 후 지난해 6월 남북정상회담으로 새롭게 평화공존 분위기가 조성될 때까지 약 10년을 낭비한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남북한과 미국 등 3자가 약 10년 전에 범한 실패를 다시 반복할 조짐이 보인다.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 모두가 나서서 남북한과 미국의 요구를 냉정하게 검토해 관련 3국에 정책 수정을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가장 먼저 김정일 정권에 대해 과감한 정책수정을 권고해야 한다. 김위원장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지도할 수 있는 인물로 부상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그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가 김대통령의 햇볕정책과 상승작용을 일으켜 북한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그러나 북한의 변화를 확인할 구체적 증거가 없다는 점 때문에 한국정치에서 햇볕정책이 갈수록 비판받고, 여야간 정쟁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도 이 점을 이유로 미국의 대북 정책을 재검토하면서 한국의 햇볕정책 추진에 조건을 달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를 미국의 세계적 안보전략에 큰 위협으로 믿고, 핵 및 미사일 문제의 해결 없이는 북한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보류됐던 국가미사일방어(NMD) 계획의 재추진 명분도 북한의 위협에서 찾고 있다.

북한은 핵 및 미사일 외교로 생존권 보장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더 이상의 ‘벼랑 끝 외교’는 위험하다. 김위원장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북한은 미사일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국정부가 햇볕정책을 더 이상 추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북―미 미사일 회담에서 자신들의 변화를 확실히 증명해야 한다.

다음으로 미국 정부에 대해서는 북한의 변화가 좀 늦어지더라도 남북문제는 한국이 주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줘야 한다는 점을 당부한다. 북한핵 소동 때처럼, 미국이 전면에 나서서 개입하면 북한정권의 위기감만 증폭시킬 것이다. 미국은 햇볕정책을 추구하는 한국정부의 ‘교류 협력을 통해 남북관계가 먼저 개선되면 군사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을 존중하고, 새 시대를 열려는 한민족을 좀더 신뢰해 줬으면 한다.

미국은 최근 NMD와 탄도탄요격미사일(ABM) 협정 논의에서 보여준 것처럼 미국에 대한 한국의 일방적 지지는 중국 및 러시아와의 갈등을 초래해 한국의 4강 외교를 곤경에 빠뜨린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김대통령은 현재 햇볕정책이 정쟁(政爭)의 대상이 돼 국민이 분열돼 있는 상태에서는 햇볕정책 같은 민족적 대사가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김대통령이 햇볕정책으로 한민족의 새로운 시대를 개척한 성공적인 인물로 평가되기를 바란다면 국민의 분열만 조장하는 야당 및 주요 언론과의 ‘싸움’을 빨리 중단해야 한다. 주요 언론의 지지 없이는 햇볕정책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호재(고려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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