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자율' 속에 감춰진 권력의 속셈

  • 입력 2001년 4월 15일 18시 41분


정부가 강행을 서둘러온 신문고시(告示)가 결국 규제개혁위원회를 통과했다. 다만 당초의 공정거래위원회 안을 부분적으로 손질하고 시행시기를 2개월 늦췄을 뿐이다.

모든 분야에서 규제가 완화되는 마당에, 더욱이 99년초 규제완화차원에서 폐지됐던 신문고시가 상황이 더 나빠지지도 않았는데 훨씬 강화된 내용으로 부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물론 신문업계가 그동안 무가지(無價紙)나 경품의 과다제공, 신문강제투입 등으로 국민에게 불편을 끼쳐온 면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신문협회는 나름대로 공정경쟁규약을 만들어 신문시장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왔고 모든 회원사의 참여 속에 공정경쟁이 정착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각 사에 공통적으로 적용하기도 힘든 신문고시를 부활하기로 했으니 과연 정부의 속셈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공정위와 규개위는 신문고시를 통과시키면서 신문업계의 자율규정으로 집행토록 했으니 문제가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하지만 ‘자율규정’이 기본적으로 신문고시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했다는 데 문제가 있다. 모든 것을 고시로 묶어 놓고 그 안에서 ‘자율’로 하라는 것은 허구(虛構)며 사실상 타율이다.

무가지비율 완화 등 문제점을 많이 시정했다고 하지만 신문고시에는 독소조항이 여전하다. 특히 ‘본사가 지국에 대해 경쟁사의 신문을 판매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불공정행위로 규정한 것은 사실상 신문공동판매의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지국이 여러 신문을 취급하면 유통부문의 힘이 그만큼 커지고 신문사는 여기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권력은 유통조직에 간여해 얼마든지 못마땅한 신문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

신문고시에는 또 일선 판매현장의 과당경쟁 개선보다는 본사와 지국간의 거래관계를 제한하는 내용이 많은데 자율계약을 규제하는 것은 행정권력의 월권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그동안 신문고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 온 것은 결코 신문시장에서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이기주의 때문이 아니다. 정부가 신문고시를 악용해 신문경영에 간섭하고 결국은 언론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자율’로 포장된 신문고시가 결정적인 순간에 언론의 목을 조르는 비수(匕首)로 악용될 수도 있다는 게 우리의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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