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철학의 거장들1~4

  • 입력 2001년 4월 13일 18시 56분


◇가볍게 더듬어 보는 '서양철학의 脈'

철학의 거장들1∼4

오트프리트 회페 엮음 이강서 외 옮김

430∼530쪽, 1만4000∼1만6000원 한길사

철학은 본래 대중을 경멸한다. 철학자는 보통 통속적 견해를 교정하는 가운데 진리를 말한다. 상승적 교정, 그것이 억견과 지식을 구분했던 플라톤 이래 모든 철학적 초월의 행보를 요약한다. 철학자는 대중을 흉내낼 때마저, 가령 여러 가지 익명으로 저서를 발표했던 키에르케고르조차 대중과 거리를 두고 있다.

왜 그런가? 이는 대중적 지혜와 철학적 지혜가 서로 다른 것을 구하기 때문이다. 대중적 일상에서 중요한 것은 직접적이고 완료 가능한 현실이다.

이 현실은 결과의 세계, 열매를 수확하는 세계이다. 반면 철학은 원인을 구한다. 철학자가 대중적 현실을 멀리한다면, 이는 이 현실에서 그것을 있게 한 원인이 무시되기 때문이다.

현실이라는 열매에는 새로운 씨앗이 배태되어 있되 잊혀져 있다. 가령 컴퓨터 화면에는 이 기계의 사상사적 유래는 물론 그것이 초래할 사상사적 변동의 잠재력은 나타나지 않는다. 철학은 그 보이지 않는 잠재력을 씨로 만드는 종자학이다.

이로부터 두 가지 결론이 따른다. 첫째, 철학은 현실에 거리를 두되 현실에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 다만 철학은 현실과 관계하되 대중과 다르게 관계할 뿐이다.

둘째, 철학의 크기는 그것이 파종해서 거둔 열매에 따라 평가된다. 하지만 위대한 철학은 후대의 철학으로만 귀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대중적 지혜의 지반이자 자양으로, 대중적 사유가 숨쉬는 공기로서 살아 있다. 철학의 거장들이 발견한 관념은 이미 통속적 견해의 신체 속에 흡수돼 있다.

대중이 철학사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철학자는 통속적 견해를 교정하듯 철학사를 고쳐 읽어야 하지만, 대중은 철학사를 몰랐던 자신의 일부인양 애지중지 읽어야 한다. 대중은 본성 상 현재의 철학에 반감을 갖기 쉬우나 과거의 철학은 숭배하기 마련이다. 조상에 대한 숭배가 의무라면, 대중에게 상식의 뿌리인 철학사는 의무적 숭배의 대상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 의무의 이행은 쉽지 않고, 그럴수록 대중은 좋고 쉬운 철학사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우리 철학계는 아직 이런 요구에 부응할 여력이 없다. 보다 많은 연구 성과, 토착화의 노력이 있은 후에야 그런 일이 가능할 것이다. 새로 나온 이 번역서는 이런 커다란 공백을 메울 작정인 양 네 권의 분량을 과시하고 있다.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중요한 서양 철학자들을 독일의 해당 권위자들이 집필했고 번역도 우리나라의 해당 전문가들이 맡았다. 계획 의도가 입문자에 초점을 맞춘, 불편 부당한 계몽서를 만드는 데 있었다는 것이 주목을 끈다.

여기에 딴죽을 걸 필요는 없다. 집필자들이 몸을 더 낮추어야 했었다는 불평도 있을 수 있지만, 이 정도 낮춘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밖에 우리말답지 않은 번역 문장이나 너무 강한 서양 냄새 때문에 불평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독자들이여, 이 정도 규모의 우리말 철학사가 나오려면 멀었으므로 꾹 참고 읽을 도리 밖에 없지 않은가.

김상환(서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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