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권은 법에 우선한다?

  • 입력 2001년 4월 12일 18시 55분


경찰이 온갖 폭력적인 방법으로 변호사의 정당한 직무집행을 방해한 것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법치주의의 근간을 부정한 명백한 불법행위다. 더군다나 사건이 벌어진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현장에서 경찰병력을 지휘한 인천 부평경찰서장은 “정권은 법에 우선한다”는 망언도 서슴지 않았다니 도대체 이들은 어느 나라 경찰인지 경악을 금할 수 없다.

우리가 특히 이 사건에 관심을 갖는 것은 경찰이 법원의 결정까지 무시했다는 점 때문이다. 대우자동차 노조원들과 노조측 대리인인 박훈(朴勳)변호사는 법원의 결정에 따라 노조사무실에 들어가려 했으나 경찰이 무자비한 폭력으로 이를 막다가 일이 커진 것이다.

대우자동차 노조는 회사측과 경찰이 부평공장 노조사무실을 봉쇄하자 회사를 상대로 출입 및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노조원의 노조사무실 출입을 막아선 안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박변호사는 9일과 10일 노조사무실을 막고 있던 경찰에 법원의 결정문을 설명하고 경찰이 계속 출입을 방해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여러 차례 경고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경찰은 막무가내로 출입을 봉쇄했고 급기야 10일 오후에는 노조원과 박변호사 등 40여명이 경찰의 곤봉과 발길질에 부상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는 한마디로 공권력을 집행하는 경찰의 모습이 아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불법 폭력이 아무런 문제도 아니라는 듯이 막말도 서슴지 않은 일선 경찰간부의 의식과 행태다. 경찰이 스스로 법질서를 부정하고 나선 것은 과거 군사 독재정권 시절에도 없던 일이다. 정권이 법에 우선한다니 국민은 무엇을 믿고 살아야 하는지 암담하기 짝이 없다.

대우자동차 매각 문제가 아무리 시급한 국가적 현안이라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노조를 억압해선 안된다. 노조가 매각협상의 최대 걸림돌이라고 판단해 정부와 회사측이 노조 존립 자체를 부정한다면 일이 더욱 어려워질 뿐이다.

물론 그동안 노조가 회사의 해외매각에 반대하면서 격렬한 가두시위를 벌인 것도 국민적 지지를 받을 일은 못됐었다. 그러나 우리는 경찰의 이번 불법대응이 정부나 회사측의 노조에 대한 시각을 나타낸 것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대우자동차의 회생 문제는 결국 노사협력에 달려 있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그런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도 당국은 이번 불법 사태의 진상을 규명하고 관련자와 지휘책임자를 엄중 문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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