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세무조사' 수사에 이용하면 안된다

  • 입력 2001년 4월 8일 18시 47분


법원이 엊그제 신용보증기금 전 서울영동지점장 이운영(李運永)씨에 대한 1심 선고공판에서 이례적으로 검찰의 잘못된 수사관행을 지적했다. 법원은 대출보증 대가로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이씨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2720만원을 선고하면서 검찰의 증거확보 절차를 문제삼았다.

재판부가 밝힌 일부 업자들의 법정 증언을 되새겨 보면 수사과정에서 검찰이 얼마나 강압적인 방법을 동원했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씨에게 돈을 준 업자들은 그것이 뇌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돈을 준 사실을 밝히고 싶지도 않았는데 검찰이 세무조사를 받게 한다는 등 유형 무형의 압력을 행사해 할 수 없이 진술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법정에서도 업자들이 돈을 건넨 사실은 인정해 이씨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졌지만법원이 검찰의 증거 확보 절차에 이의를 제기한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수사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절차도 투명해야 한다는 법원의 지적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사실 이씨의 뇌물 사건은 수사배경과 관련해서도 석연찮은 점이 없지 않았다. 이씨가 지난해 박지원(朴智元)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의 대출보증 외압 의혹을 제기한 뒤 그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대출보증 외압 의혹은 이씨의 자작극’이라는 수사결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검찰이 이씨의 개인비리를 부각시킨 게 아니냐는 논란이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검찰이 세무조사를 내세워 진술을 받아냈다는 점이다. 검찰이 어떻게 자신들의 소관업무도 아닌 세무조사를 들먹일 수 있는가. 우선 이 자체가 잘못된 일이다. 이는 수사목표를 위해선 무슨 방법이라도 동원할 수 있다는 초법적 발상이다. 오죽했으면 법원이 잘못된 수사관행을 지적하고 나섰겠는가.

그동안 검찰은 정치인 사정(司正) 등 대형 기획수사에 나설 때도 ‘기업인들의 입’에서 수사의 실마리를 찾곤 했다. 무엇보다 세무조사 등의 ‘후환’을 두려워하는 기업인들의 약점을 이용한 것이다. 때문에 검찰권에 대한 불신이 더욱 깊어졌다.

이제 검찰도 달라져야 한다. 무엇보다 합리적인 방법으로 증거를 확보하고 피의자의 인권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만 검찰에 대한 신뢰가 되살아나고 법질서가 뿌리 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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