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원재/공정위는 공정한가

  • 입력 2001년 4월 8일 18시 40분


“신문사는 이제야 조금이나마 쓴맛을 보는 것이다. 지금까지 기업들이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하고 속앓이를 했는지 실감을 하게 될 것이다.”

며칠 전 공정거래위원회 창립 20주년 리셉션장에서 만난 4대그룹 소속의 A사장. 기자에게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는 “공정위가 ‘약자’인 기업에 했던 행태에 비춰볼 때 신문고시(告示)가 부활되면 언론계도 꽤 시달릴 것”이라며 “지금은 전초전에 불과하다”고 단언했다.

다른 그룹의 임원 B씨는 “공정위가 신문고시 부활날짜를 5월1일로 못박고 밀어붙이는 것을 보면 군사작전을 방불케 한다”면서“언론장악용이란 정치적 목적이 아니라면 규제개혁위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신문고시를 강행할 이유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조사권을 앞세운 공정위의 서슬에 질린 탓일까. 취재차 만난 기업의 임원들은 자신의 이름이나 소속 회사는 밝히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밉보였다가 소속회사가 조사라도 받으면 큰일이라고 걱정했다.

‘경제 검찰’이라 불리는 공정위에 대한 기업들의 불신이 커지고 있다. 공정위는 1981년 설립 이후 상당기간 비교적 공정한 잣대를 대려고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부쩍 ‘정치색’으로 물드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경련 이승철 상무(경제학 박사)는 “적어도 지난 정권까지는 공정위가 본연의 임무에 어느 정도 충실했지만 현 정권에서는 공정거래 정책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한 흔적이 뚜렷하다”고 지적했다. 기업조사권을 순수한 의미의 부당내부거래를 규제하는 데 쓰기보다는 기업을 압박하고 재벌개혁을 밀어붙이는 수단으로 ‘오용’ 또는 ‘남용’했다는 것이다.

올해 신문의 날(7일) 표어에는 ‘언론자유 소중하게 공정보도 책임있게’라는 것이 들어있다. 당연히 신문은, 그리고 기자는 공정보도에 충실했는지 겸허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그렇다면 공정위는 이름 그대로 정책의 공정성에 충실했는가. 분명한 것은 정책과 역할의 수요자이자 공정위의 ‘고객’인 기업이 공정위의 ‘공정성’을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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