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기적을 만들다

  • 입력 2001년 3월 30일 18시 50분


◇영화 '플록' 원작자 스미스의 영화같은 삶

그레고리 w 스미스 지음/ 396쪽/ 1만3000원 /황금가지

로마의 검투사(‘글래디에이터’)와 중국의 고수(‘와호장룡’)가 한판 대결을 벌였던 2001년 아카데미 시상식을 조용히 지켜본 사람이 있었다. 영화 ‘폴록’의 원작자인 그레고리 화이트 스미스(52)였다.

미국 현대미술가인 잭슨 폴록의 삶을 극화한 영화 ‘폴록’은 스미스의 원작 전기인 ‘잭슨 폴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쟁쟁한 경쟁작과 겨루어 이 작품이 여우조연상(마르시아 게이 하덴)을 받았을 때 스미스가 느낀 감회는 1998년 퓰리처상을 받았을 때의 기쁨 못지 않았다.

‘기적을 만들다’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보지 못했던, 그러나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그의 휴먼 다큐멘터리다.

어느날 갑자기 선고받은 시한부 인생, 예기치 않은 불행에 대한 좌절감, 그리고 초인적인 생의 의지. 다른 투병기와 마찬가지로 희망으로 무장한 인간승리의 드라마가 생생하게 실렸다.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작가의 길을 택한 스미스는 1984년 갑자기 발병한 뇌종양으로 3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는다. 혼자 걸을 수 없었고, 누구를 만날 수도 없었지만 그는 무기력하게 죽음을 기다리지만은 않았다. “3개월은 나와 같은 증상을 가진 환자들 중 상당수가 3개월 이내에 죽었다는 의미이지, 내가 3개월이 지나면 틀림없이 죽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고환암에 걸린 사이클선수 랜스 암스트롱이 죽음의 사이클 경기인 ‘뚜르 드 프랑스’ 대회에 자기 남은 생의 도박을 걸었듯이(‘그대 향해 달려가리라’·학원사·2000년), 스미스는 잭슨 폴록의 전기를 완성하는데 남은 인생을 걸었다. 그래도 가장 무서운 것은 자꾸 나약해지려는 자신이었다. “대다수의 환자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왜 하필 내가?’라는 자기 연민과 깨어있을 때면 늘 따라다니는 ‘우울증’이다.”

10여년간 고통의 시간 속에서 그는 1998년 필생의 작업인 ‘잭슨 폴록’의 전기를 완성했다. 이 작업이 그의 죽음을 유예시킨 것이다. 그는 현재 고흐의 전기 작업에서 새로운 삶의 이유를 발견했다고 한다. 머릿속에 아직 건재한 뇌종양과 함께. 현대의학은 이런 인간승리를 ‘기적’이라고 부를 뿐이다. 원제 ‘Making Miracle Happen’(1997).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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