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현대건설 부실 이렇게 클 줄이야

  • 입력 2001년 3월 27일 18시 55분


현대건설의 잠재 부실이 예상보다 훨씬 큰 것으로 드러났다.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이 회사가 지난해 2조9000억원에 이르는 적자를 냄으로써 자본 잠식 규모가 8000억원에 이른다는 소식은 충격적이다.

정부가 그동안 근본적인 치유를 하지 않고 자금난을 호소할 때마다 땜질식 지원으로 종양을 더 키운 결과라고 하겠다. 정부는 시장의 원리에도 맞지 않고 형평성을 잃은 지원으로 현대건설을 이 지경으로 만든 책임이 있다.

현대건설은 얼마 전 고인이 된 정주영(鄭周永)씨가 창업한 한국의 간판 건설회사다. 현대건설을 살리느냐 죽이느냐 하는 결정은 건설업의 미래와 시장에 주는 충격, 기업의 존속가치를 따져 결정할 일이지만 이 회사가 축적한 고난도의 시공 경험이나 기술력을 그냥 버리기에는 아깝다는 평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정부와 채권은행단은 이미 출자전환을 통해 현대건설을 살리기로 방향을 잡은 것 같지만 문제는 시기와 과정이다. 출자전환은 될수록 신속해야 시장의 충격이 적고 효과가 빠르다. 현대건설이 잘못되면 다른 건설회사들의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쳐 해외공사 수주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물론 현대건설이 지난해 2000억원대의 영업 이익을 냈다는 점에서 적절한 규모의 출자전환을 통해 금융비용 부담을 덜어주면 회생 가능성이 없지 않다. 다만 건설업의 워크아웃이나 출자전환이 성공할 확률이 제조업보다 낮다는 것은 걱정거리다. 회사의 신인도가 떨어지면 수주가 어려워지고 수많은 현장에서 발생하는 작업기강 해이를 제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출자전환을 할 경우 대주주와 경영진에 대한 문책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들이 1조원이 넘는 대출금을 출자전환해 주면서 대주주와 경영진의 문책을 소홀히 해서는 국민 감정이 용납하기 어렵다. 대주주의 부당한 경영간섭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친 부분이 있다면 배상 책임도 지워야 할 것이다.

현대건설은 아직도 ‘가신’이라 불리는 임원들이 많은 가분수 회사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경영진의 자질에 대해서도 금융권에서는 오래 전부터 회의적인 반응이 나왔던 것이 사실이다.

군살을 과감히 도려내는 구조조정이 선행되지 않으면 출자전환으로도 살아나기 어렵다. 워크아웃을 받으며 갖은 골치를 썩이다 결국 청산에 들어간 동아건설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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