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는 해야 한다. 다만 언제 어디에 투자하느냐가 문제다.
주식매매만 중개해주던 증권사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주겠다고 나서면서 내놓은 회심의 작품이 랩어카운트(Wrap Account)다.
수수료를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 종합자산관리계좌와 (좁은 의미의) 랩어카운트로 나뉘어지는 이 상품이 판매된 지 한달 보름이 지났다. 그 동안의 고객 유치 및 자산운용 결과 새로운 자산운용시스템으로서 정착할 수 있는 가능성도 확인됐으나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많다.
▽현황〓증권업협회 조사결과 3월 6일 현재 수탁규모는 9300억여원(1700여계좌). 그 뒤 유치경쟁이 치열해지면서 27일 현재 수탁고는 2조원가량. 삼성 현대증권은 5000억원을 넘어섰으며 LG가 4700억원. 수치로는 눈부신 성장세지만 신규 유입자금 비중은 높지 않다. 삼성이 30%가량이며 현대와 LG투자도 50%에 훨씬 미달한다. 주로 수수료가 싸다는 이유로 종전의 ‘랩형’계좌나 주식예탁계좌에서 옮겨온 자금이 대부분이다.
미국의 랩어카운트에서는 받아들이지 않는 법인고객 비중이 3분의 2 이상이다. 수탁규모 급증에 계열사들의 협조가 컸다는 얘기도 들린다. 포트폴리오도 고객별로 차별화된 것이 아니라 증권사별로 주식 또는 MMF, 채권 등 한 쪽으로 치우쳐있다. 말은 “고객의 성향에 맞는 투자를 유도한다”고 했지만 FP의 경험 부족과 불안한 시장환경 등으로 아직은 역부족인 상황.
▽개선점〓랩어카운트는 국내에선 사이버 주식거래의 급증과 신설 증권사들의 수수료율 인하에 위기감을 느낀 기존 증권사들이 시장의 요구에 앞서 치고 나갔다. 그래서 “아직은 증권사들 내부에서조차 이 상품의 중요성에 대해 의견일치가 이뤄지지 못했다. 고객들도 뭐가 좋다는 것인지를 잘 모르는 것 같다.”(LG투자증권 김남형과장)
증권사들은 브로커에서 FP로 변신해야 하는 영업직원 설득에도 애를 먹고 있다. 랩어카운트의 수수료체계가 당장은 이들에 불리하게 돼 있다. 월 평균 40억원의 약정을 올리는 증권사 과장은 지금은 매매중개수수료로 1년에 2000만원(수수료율 0.5%)을 번다. 수수료를 자산 기준으로 받는 랩어카운트에서 2000만원의 수수료를 벌려면 한달에 한번만 주식을 매매하는 경우 수탁고평균잔액이 150억남짓 돼야 한다.
수탁 규모가 갑자기 크게 늘어나지 않는 한 현재 증권사 전체수입의 60%남짓을 차지하고 있는 수수료수입이 크게 감소하고 영업직원들의 성과급도 덩달아 줄어들게 된다. 현대증권 신용철대리는 “랩어카운트가 정착되려면 단기적인 손해를 감수하고 파이낸셜플래너가 차분히 실력을 쌓아나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수탁액 과장, 목표수익률 제시 등의 증권사간 과열경쟁은 안정적인 자산운용이라는 랩어카운트의 기본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철용기자>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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