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랩어카운트 "뭐가 좋다는 건지…"

  • 입력 2001년 3월 27일 18시 46분


1980년에 주식에 파묻어둔 100만원은 2000년말에는 얼마로 불어있을까? 159만2600원이다. 3년짜리 회사채에 넣어뒀다면 490만5500원이나 된다. 부동산에 투자했다면 123만원1100원에 불과하다. 그대로 현금으로 갖고 있었다면? 물론 수중에 만원짜리 100장이 남아있겠지만 물가상승률을 감안할 때 그 가치는 33만원1900원에 불과하다.

투자는 해야 한다. 다만 언제 어디에 투자하느냐가 문제다.

주식매매만 중개해주던 증권사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주겠다고 나서면서 내놓은 회심의 작품이 랩어카운트(Wrap Account)다.

수수료를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 종합자산관리계좌와 (좁은 의미의) 랩어카운트로 나뉘어지는 이 상품이 판매된 지 한달 보름이 지났다. 그 동안의 고객 유치 및 자산운용 결과 새로운 자산운용시스템으로서 정착할 수 있는 가능성도 확인됐으나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많다.

▽현황〓증권업협회 조사결과 3월 6일 현재 수탁규모는 9300억여원(1700여계좌). 그 뒤 유치경쟁이 치열해지면서 27일 현재 수탁고는 2조원가량. 삼성 현대증권은 5000억원을 넘어섰으며 LG가 4700억원. 수치로는 눈부신 성장세지만 신규 유입자금 비중은 높지 않다. 삼성이 30%가량이며 현대와 LG투자도 50%에 훨씬 미달한다. 주로 수수료가 싸다는 이유로 종전의 ‘랩형’계좌나 주식예탁계좌에서 옮겨온 자금이 대부분이다.

미국의 랩어카운트에서는 받아들이지 않는 법인고객 비중이 3분의 2 이상이다. 수탁규모 급증에 계열사들의 협조가 컸다는 얘기도 들린다. 포트폴리오도 고객별로 차별화된 것이 아니라 증권사별로 주식 또는 MMF, 채권 등 한 쪽으로 치우쳐있다. 말은 “고객의 성향에 맞는 투자를 유도한다”고 했지만 FP의 경험 부족과 불안한 시장환경 등으로 아직은 역부족인 상황.

▽개선점〓랩어카운트는 국내에선 사이버 주식거래의 급증과 신설 증권사들의 수수료율 인하에 위기감을 느낀 기존 증권사들이 시장의 요구에 앞서 치고 나갔다. 그래서 “아직은 증권사들 내부에서조차 이 상품의 중요성에 대해 의견일치가 이뤄지지 못했다. 고객들도 뭐가 좋다는 것인지를 잘 모르는 것 같다.”(LG투자증권 김남형과장)

증권사들은 브로커에서 FP로 변신해야 하는 영업직원 설득에도 애를 먹고 있다. 랩어카운트의 수수료체계가 당장은 이들에 불리하게 돼 있다. 월 평균 40억원의 약정을 올리는 증권사 과장은 지금은 매매중개수수료로 1년에 2000만원(수수료율 0.5%)을 번다. 수수료를 자산 기준으로 받는 랩어카운트에서 2000만원의 수수료를 벌려면 한달에 한번만 주식을 매매하는 경우 수탁고평균잔액이 150억남짓 돼야 한다.

수탁 규모가 갑자기 크게 늘어나지 않는 한 현재 증권사 전체수입의 60%남짓을 차지하고 있는 수수료수입이 크게 감소하고 영업직원들의 성과급도 덩달아 줄어들게 된다. 현대증권 신용철대리는 “랩어카운트가 정착되려면 단기적인 손해를 감수하고 파이낸셜플래너가 차분히 실력을 쌓아나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수탁액 과장, 목표수익률 제시 등의 증권사간 과열경쟁은 안정적인 자산운용이라는 랩어카운트의 기본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철용기자>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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