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교수의 법과 영화사이]<웨이코>

  • 입력 2001년 3월 20일 18시 29분


<웨이코 >(WACO: The Rules of Engagement, 1997)

감독: William Gazecki

이른바 '공권력'은 국민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주어진 힘이다.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존재이유이자 임무이기 때문이다. 종교의 자유는 자유민주주의 헌법의 핵심에 속한다. 종교는 세속과 다른 삶의 원리가 있다.

그런데 종교가 국민의 삶에 위협이 될 때, 공권력은 어떤 조건 아래 개입할 수 있는가? 미국 영화 '웨이코'(WACO)는 '공권력 발동 수칙'(rules of engagement)라는 부제가 대변하듯 이 난제에 대한 공개토론의 장을 여는 영화이다. 특정한 주인공도 없이, 2시간에 걸쳐 수십 명이 교차하여 등장하는 이 작품은 신문기사, 비디오 기록, 해설, 각종 인터뷰와 증언을 엮어 만든 변형 기록영화이다. 사상 최대의 도큐멘터리, 끌로드 란쯔만 (Claude Lanzmann)감독의 10시간 짜리 '쇼아' (SHOAH, 1985)의 기법이 십분 원용되었다. 세계인권영화제의 단골 초청작이기도 한 이 쇼아(히브리말로 '절멸' '파국'을 의미)는 '기록영상'이 전혀 없는 '도큐멘터리'라는 특이한 작품이다.

유대인의 대량학살을 다룬 이 수작은 대중의 접근은 쉽지 않지만 전문 영화인의 세계에서는 가히 신화적인 권위를 누린다고 한다. 스필버그의 '쉬들러 리스트'(Shindler's List)의 원조도 바로 이 작품이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스필버거가 영상을 통한 역사의 재구성이라는 방법을 택했다면 란쯔만은 오로지 증언이라는 가공되지 않은 새로운 영화의 기법을 창조했던 것이다.

1993년, 미국 텍사스 주의 웨이코 시의 외곽에 자리한 한 종교 집단촌에 공권력이 투입된다. 그 과정에서 4사람의 연방군대와 86명의 민간인이 생명을 잃는 참사가 발생한다. 데이비드 코레쉬(David Koresh)라는 교주의 영도 아래 집단생활을 하던 130명의 신도는 '세상의 종말'을 대비하여 준비를 하고 있었다. 'Branch Davidian'이라는 이 소집단의 뿌리는 1934년에 창립된 미국 기독교의 미세한 말단종파로 몇 차례의 내분을 거쳐 새 지도자 데이비드(본명 Vernan Howell)가 분파를 장악하였다. 여러 곳을 전전하며 현대 유목민 생활을 하던 이들은 마침내 웨이코시 외곽에 하나의 건물 속에 집단주거지를 건설하였다.

기독교 성경의 자구를 '본래의 의미'대로 고집하는 이들은 시대를 초월한 자신들의 진리를 확신했다. 주와 연방정부는 미성년 간음과 마약복용 등 갖가지 범죄의 혐의가 짙은 이들을 사교(邪敎)집단으로 규정하였다. 신도와 이웃의 안전에 대한 위험이 높고 심지어는 악몽의 존스타운(Jonestown), '인민사원'(People's Temple)사건 처럼 집단자살 사태가 임박하다고 판단하였다.

클린턴 대통령 취임 첫 해, 강력한 '법과 질서'를 내세운 리노 법무장관의 강경진압책이 엄청난 인권유린을 초래한다. 평화로운 하느님의 법을 신봉하는 시민들은 불과 사건 몇 분전에 중무장한 공권력이 투입되는 사실을 알았다. 미미한 저항을 진압하기 위해 마약단속반(Bureau of Alcohol, Tobacco, and Firearms) 과 FBI의 중화기가 불을 뿜었고 피신하는 신도들을 무차별 '소탕'했다. 시야가 제한된 심야의 작전이 더욱 피해를 가중시켰다.

영화는 국회의 진상조사 청문회를 중심으로 사건을 재구성한다. 정부와 피해자, 그리고 중립적인 제3의 목소리를 비교적 균형 있게 조합하여 종교적 행위에 대한 공권력 발동의 요건을 심도 있게 조명한다. 수십 명의 현역 국회의원이 등장하여 예리한 질문을 퍼붓는 모습은 국회 청문회의 진수를 보여준다. 관객은 소수종교 국민을 적으로 바라보는 정부관리의 편향된 시각이 거짓, 유인, 폭력, 혼란, 대량살인의 원흉이라는 결론을 어렵지 않게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종교의 폐악'이라는 숨은 원인에 대한 진지한 토론의 필요성 또한 강하게 느끼게 한다.

영화 '웨이코'는 세계 어느 나라 못지 않게 극성 종교집단이 많은 이 나라에서 손을 놓다시피 한 공권력의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할 계기를 제공해 주는 타산지석을 싣고 있다.

<서울대 법대 교수>

ahnkw@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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