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는내친구]“치한 두세명쯤은 겁안나요”

  • 입력 2001년 3월 13일 18시 24분


화 반칙왕에서 임대호(송강호)는 지각 대장에 예금 유치 실적 하나 없는 소심한 말단 은행원으로 나온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레슬링 도장을 찾아 반칙 전문 악역으로 변신, 인생의 새로운 의미를 찾는다.

서울 신월동에 사는 가정주부 이명숙씨(42)도 그랬다. 지난해 9월 버스를 타고 가다 집 근처에서 우연히 간판 하나에 눈길을 사로잡혔다. ‘격기도 체육관 개관 관원 모집’. 그 길로 곧장 체육관에 등록하고 무술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남들이 잘 하지 않는 힘든 운동으로 매사에 소극적이고 나약한 성격을 고쳐보려고 했던 것.

처음에는 무슨 여자가 그리 거친 운동을 하려고 하느냐며 주위의 반대가 심했다. 특히 레슬링 유도 등을 섞은 격투기를 하다 혹시 다칠까봐 가족들의 만류가 대단했다.

하지만 일단 마음먹은 만큼 해봐야 한다며 고집을 피웠고 끝내 설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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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시작했나 싶었어요.” 처음에는 고행의 연속이었다. 기술을 익히기 전까지 고된 기초 훈련과정을 거쳐야 했다. PT체조, 하체와 허리 운동을 하느라 온몸은 파김치. 하지만 태클과 꺾기, 발 차기 등 다양한 기술을 배우면서 격기도의 재미에 푹 빠져들었다. 1주일에 5차례나 도장을 찾았고 토요일 자율훈련도 빼먹는 일이 없었다. 집에서도 TV로 외국 프로레슬링을 즐겨 보며 기술을 연구할 정도. 우렁찬 기합 소리와 함께 중년의 우울함과 스트레스도 날려버렸다. 요즘은 무공이 늘어 어지간한 남자 수강생과 맞붙어도 과감한 꺾기 동작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있다. 이명숙씨와 자주 대련을 하는 무술 전공의 한 남자 대학생은 “아주머니가 한번 꺾으면 숨이 턱 막히고 몹시 아프다”고 말했다.

“밤길도 무섭지 않아요.” 밤늦게 으슥한 골목길을 혼자 갈 때는 발걸음이 자꾸 빨라지고 뒤를 자주 돌아보던 그녀가 요새는 느긋하고 당당하게 걷고 있다. 치한 두세명을 만나도 끄떡없을 것 같다고 큰소리까지 쳤다. 전에는 집안 일을 오래하면 근력이 없어 마비 증세를 보였는데 근래에는 하루종일 일해도 끄떡없다. 교회 성가대 단원으로 노래를 할 때도 호흡이 깊어지고 성량이 늘어나 주위로부터 목소리가 고와졌다는 얘기도 들었다. 무엇보다도 이명숙씨는 “자신감과 적극적인 사고방식이 생긴 게 가장 큰 수확”이라고 밝혔다. 어떤 일을 할 때 머뭇거리는 경우가 많았으나 이제는 힘겨운 일도 해낼 수 있다는 의욕이 생겼다는 것. 삶의 활력을 발견한 이명숙씨는 최근 꽃꽂이 자격증을 따냈으며 앞으로 수강생을 모아 강의도 할 계획이다.

<김종석기자>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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