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벼랑에서 살다

  • 입력 2001년 2월 23일 18시 48분


◇달동네의 버거운 삶속에서 희망을 보다/조은 산문, 김홍희 사진/192쪽, 7500원/마음산책

‘벼랑에서 만나자. 부디 그 곳에서 웃어주고 악수도 벼랑에서 목숨처럼 해다오’(조은 ‘지금은 비가…’중)

서울 한복판 달동네, 초라한 방 한 칸과 부엌 한 칸이 전부인 집. 때론 끼니를 걱정해야하는 궁핍한 생활, 주워온 개와 단둘이 정 붙이고 사는 중년 독신여성의 힘겨운 세상살이…. 하지만 사람들은 벼랑에 자리잡은 그녀의 집에서 평안을 느낀다. 왜 그럴까?

이 작품은 채송화처럼 옹송거리며 사는 시인 조은이 한 달간 칩거하며 ‘바위에서 한 방울의 땀을 짜내듯’ 쓴 뜨거운 산문이다. 서울 한복판 달동네의 삶이 눈길을 확 끌어 당길리 없지만 평범 속에서 생의 보석을 발견하는 일이란 늘 조금의 인내와 공감을 필요로 한다.

조은은 2중의 소수자로서 버거운 삶을 버티고 있다. 쓰러기지 직전인 산동네 소시민으로, 가부장 사회에서 일탈한 중년 독신으로. 주워온 개 ‘또또’를 키우고 이웃과 정을 나누는 여성성은 그래서 눈물겹다.

위태롭고 외롭고 가난한 삶이지만 시인은 노여워하지도, 슬퍼하지도 않는다. 이를 끌어안고 긍정적으로 살아내려는 안간힘이 적지않은 울림을 준다. ‘벼랑’에서 만나면 악수도 목숨처럼 할 수 있는 법. 많은 사람들은 그녀의 ‘벼랑’에 찾아와 위로를 얻고 돌아간다. 더 이상의 끝이 없으므로 다시 살아봐야겠다는 긍정의 힘에 충전되어.

강박한 세상에 시인이 타전하는 나지막한 메시지는 사랑과 긍정이다. 매일 자기가 쓴 소설을 전화로 불러주는 오랜 친구인 소설가 신경숙이 수신자 중 한 명이다. 조은과의 추억을 더듬는 발문에서 신씨는 그녀의 가슴 속 차가운 불에 “전율했다” 한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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