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의 대중문화 째려보기]임재범과 짐 모리슨

  • 입력 2001년 2월 23일 17시 50분


괴테는 이탈리아 여행을 떠나는 만년의 조수 에커만에게 "돌아오지만 않는다면 여행은 멋진 것이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돌아오지 않아야 할 곳은 여행의 출발점이 아니라 여행을 하기 전 자신의 모습이 아닐까요?

삶을 여행에 비유하는 것은 진부한 일이겠지요. 허나 그 진부함 속에는 자신을 끝없이 바꾸고 변화시키는 오랜 여정이 곧 삶의 본질이란 진리가 숨어있습니다. 노래는 그 여정의 막간에 피로를 씻는 작은 비누거품이겠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여행을 좀더 편안하고 행복하게 만들려고 노력하지만, 때론 그와는 다른 길을 가는 이도 있습니다. 극단으로 가서 철조망 너머의 빛을 보고 생을 마감한 예술가들. 프랑스 파리에 묻혀 있는 도어즈의 리더 싱어 짐 모리슨도 그런 위험한 여행을 감행했던 가수였지요.

올리버 스톤이 짐 모리슨의 삶을 영화로 만든 것은 미합중국에서 1960년대를 보냈던 젊은이의 희망과 좌절, 추억과 환멸, 사랑과 고통이 그의 노래와 삶 속에 녹아 있기 때문이겠지요. 즉 짐 모리슨은 케네디나 닉슨, 베트남 전쟁처럼 그 시대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미합중국은 퇴폐와 부도덕, 반애국적이며 반교육적이라는 죄명을 그의 목에 걸었지요.

짐 모리슨은 조국을 떠났고 프랑스에서 죽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미합중국이 원하는 자유의 한계를 역설적으로 보여주었지요. 지금도 모리슨의 무덤을 찾아가노라면 그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경관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참배객들이 그의 무덤에 걸터 앉아 LSD라도 할까 염려하기 때문일까요?

폭설과 함께 임재범이란 이름 석 자가 유난히 스포치신문 여기저기에 실렸습니다. 손지창과 형제라는 것, 또 머리를 박박 밀고 결혼식에 왔다는 것. 그 불편한 사진과 기사들을 보면서 저는 임재범의 오랜 방황을 떠올렸습니다. 그를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언제였던가요? 임희숙과 함께 열창했던 '내 하나의 사랑은 가고' 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네요.

<메모리즈(Memories)>란 앨범 제목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가 기억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또 왜 지금 그 기억들을 두 장의 CD에 모을 생각을 했을까요? 낯 익은 선율과 영혼을 울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저는 그가 이제 그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고 싶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저는 그가 짐 모리슨처럼 타국에서 쓸쓸히 죽어가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직 우리의 대중음악판이 그처럼 자유로운 영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네요. 6개월마다 앨범을 내고, 앨범에 실린 노래 중 한두 곡만 텔레비전에 나와서 립 싱크를 하는 가수들과 임재범을 나란히 세우는 것 자체가 그에겐 치욕일 터입니다.

아마도 임재범은 다시 떠나겠지요. 그 여행은 시간적, 공간적 제약이 없는 예술가의 길입니다. 이번에는 또 얼마나 눈부신 깨달음을 안고 올까요? 그의 여행이 힘든 만큼 그를 기다리는 우리들의 자세 또한 새로워져야 하겠습니다. 아쉽더라도 참아야지요. "돌아올 그대 모습 그려보는 것만으로 너무나도 행복한"(그대는 어디에) 나날들. 기억이란 결국 가수의 변화를 확인하는 것임과 동시에 그 노래를 듣는 나 자신의 성숙을 발견하는 것일 테니까요.

소설가 김탁환(건양대 교수) tagtag@kytis.ko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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