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최운열/전경련 '새다짐' 아쉬움

  • 입력 2001년 2월 15일 18시 52분


전경련은 40년 전 ‘자유시장경제의 창달과 건전한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올바른 경제정책을 구현하고 우리 경제의 국제화를 촉진할 것’을 목적으로 출범했다. 오랜 역사를 지닌 전경련이 지금 전환기에 처해 있는 것 같다.

업종단체 65개, 우리나라 대표적 기업 380개사를 회원으로 갖고 있으면서 국가 경제정책 수립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해온 전경련이었다. 그래서 기업의 대주주라면 한번쯤 전경련 회장이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전경련 회장의 선출 과정을 보면 전경련의 위상이 최근 얼마나 변했는가를 실감할 수 있다. 자발적으로 회장을 하겠다는 후보가 없어 김각중(金珏中) 현회장이 본의 아니게 자리를 수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 같다. 왜, 무엇이 전경련의 위상을 오늘처럼 만들었을까.

과거 정경유착을 통해 정치권력은 정치자금을 조달하는 창구로, 기업은 사세 확장의 수단으로 전경련을 서로 이용했던 측면도 없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기업들은 원칙에 입각하지 않은 외형 위주의 성장전략을 추구했고 그 결과 미증유의 경제위기를 초래한 원인의 일단을 제공하기도 했다. 경제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도 전경련은 위기를 초래한 원인에 대한 겸허한 자기 반성 없이 회원사들의 이익만을 대변하고 개혁을 싫어하는 단체라는 오해를 받았다. 일부 급진적인 시민단체들은 전경련의 해체를 주장하기까지 했다.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 김회장 체제에서 전경련은 오히려 당초의 설립 목적에 보다 충실하게 운영되고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우선 야망이 클 수밖에 없는 5대 그룹 대주주가 아니란 사실 때문이다. 또 이 자리를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면서 외부 압력에 굴하지 않고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 회장체제 출범과 함께 전경련은 ‘경제계의 각오와 다짐’을 발표, 기업 본연의 책무에 충실하고 투명하고 합리적인 경영을 할 것을 다짐했다. 소비자를 중시하는 경영을 추구하고 노사간 신뢰를 형성하며 지식 정보화 사회를 선도하겠다고 선언했다. 그것은 바로 이 시대가 기업에 요구하고 있는 기대이기도 하다. 문제는 전경련이 국민의 신뢰를 받는 경제단체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단순한 선언으로 그치지 말고 실질적으로 변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점이다. 이번 선언에 대주주 중심이 아닌 전체 주주 중심의 경영을 하겠다는 다짐이 빠진 것도 기대에 못미친다.

정치권이나 국민도 이번 기회에 기업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기업은 기본적으로 이윤추구기관이지 자선단체가 아니다. 이윤추구기관으로 구성된 단체에 시민단체나 종교단체에 요구하는 도덕성과 윤리성을 그대로 엄격하게 적용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기업은 한 나라의 부(富)를 창출하는 주체로서 고용창출과 세수증대 등을 통해 궁극적으로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직결돼 있다. 어떻게 하면 경영하기 좋은 기업환경을 만들 것인가에 정책의 우선 순위를 둬야 한다.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우려는 사람들에게 기업을 하고 싶다는 희망과 용기를 갖게 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기업은 국민의 애정과 관심의 대상이지 결코 질투나 청산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기업들은 무조건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법과 제도의 틀 안에서, 그리고 상식적으로 이해되는 규준을 지키는 전제 하에서 이윤을 추구해야 한다. 주주, 경영자, 근로자, 채권자 및 소비자 등 이해관계자들의 이해가 합리적으로 조정돼야 기업의 가치가 극대화된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대주주 경영자들은 경영권을 이전할 때 경영능력을 후계자 선정의 기준으로 삼아야지 가족관계만 중시하는 구태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재산의 상속이나 증여에 있어서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규범을 준수해야 국민의 사랑을 받는 기업인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경련 회장 선출에서 빚어진 ‘작지만 큰 소동’은 우리나라의 ‘기업가 정신’이 2단계로 진입하는 국면에 있어서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일 수도 있다.

최운열(서강대 교수·한국증권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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