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천의(天意)

  • 입력 2001년 2월 5일 16시 52분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 ‘하늘이 알고 내가 안다.’ 우리가 종종 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하늘도 우리 사람처럼 肉身과 五感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科學이 발달한 지금, 하늘은 그저 物理的인 存在일 뿐 理性的인 存在는 아니다. 그동안 달에 수 차례나 갔다 왔고 인공위성이 밤하늘의 반딧불이처럼 날고 있지만 아직 ‘하늘’을 만나고 온 사람은 없다.

그러나 불과 100년 전 만 해도 그렇게 생각하지를 않았다. 사람과 똑같이 생각하고 즐기며, 好惡(호오·좋아하고 싫어하는 것)가 人間과 다름이 없다고 여겼다.

東西古今을 莫論(막론)하고 아득한 옛날, 초기의 인류가 직면했던 가장 중요한 問題는 ‘生存’이었으며 그것을 解決하기 위한 첫 課題가 自然에 대한 理解와 適應(적응)이었다. 그런데 그 때는 無知蒙昧(무지몽매)했으므로 그저 모든 자연현상에 대해 ‘그렇다’는 것만 알았지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모르고 단지 거대한 존재 ‘하늘’의 造化라고만 여겼을 뿐이다.

모르면 무서운 법, 게다가 그 자연의 위력은 또 얼마나 대단했던가? 그래서 자연에 대한 恐怖(공포)가 생겼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가치질서가 필요하게 되었는데 여기서 나온 것이 앞서 말한 특이한 天道觀, 즉 ‘有情의 宇宙觀’이다. 섬기기 위해서는 인간과 똑 같은 성격을 부여해야만 되었던 것이다.

이 관념은 중국의 周나라 초(기원전 11세기)부터 생겨났다. 모든 것을 잘도 받아들였던 우리 조상들께서 이것이라고 마다했겠는가? 그래서 냉큼 받아와서는 그것도 金科玉條(금과옥조)로 받들었는데 그러다 보니 우리에게도 끼친 영향이 대단했다. 대체로 이런 것들이었다.

첫째, 하늘도 인간과 똑같은 五感을 가지고 있으면서 下界를 지배하고, 둘째, 인간도 天意에 의해 태어난 이상 그야말로 ‘하늘처럼’ 받들고 그 도리를 본받아야 하며, 셋째, 그렇지 않고 못된 짓을 하면 ‘이놈!’하고 야단을 친다. 그래서 ‘天罰을 받는다’는 말도 있게 되는 것이다.

그 天罰이 지금의 天災地變(천재지변)이다. 지난 번 우리나라를 엄습했던 寒波(한파)를 두고 옛날 같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하늘이 노하여 酷寒(혹한)을 내리셨도다.’ 그것은 ‘좀 잘하라!’는 인간에 대한 警告이기도 하였다. 다음은 그 天意에 대해 우리 조상들이 반응했던 ‘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