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노형/부시 통상정책 한국에 부정적

  • 입력 2001년 1월 18일 18시 37분


취임을 앞둔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 당선자는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 로버트 졸릭을 지명했다. 자유무역주의자로 알려진 졸릭이 과거 미국자동차협회에서 근무한 경력 등을 들어 국내에서는 부시 정부가 한국의 자동차시장 개방 등 공세적인 통상정책을 수행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자유무역주의는 시장 개방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이런 우려는 신빙성이 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부시 정부의 통상정책을 전망하면서 USTR 등 행정부에만 주목하고 있다. 이는 미국 통상정책의 겉모습만 보고 있다는 점에서 불완전한 관찰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즉, 미국의 헌법상 의회가 통상 권한을 가지며, 의회의 통상 권한은 외교를 수행하는 대통령에게 위임되기 때문이다. 통상정책에 있어서 의회가 머리라면 행정부는 팔다리에 불과하다. 따라서 부시 대통령 당선자가 취임한 이후 미국의 통상정책을 전망하기 위해서는 미국 의회 의원들의 면면, 특히 통상에 관한 주된 권한을 가지고 있는 상원의 재무위원회와 하원의 세입위원회에 주목해야 한다.

2001년 새로 구성된 제107차 미국 의회의 가장 큰 특징은 종래 공화당이 다수 의석을 유지하던 상원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이 팽팽하게 맞서게 된 점이다. 이런 새 구도와 상원 중진의원 개개인의 성향을 고려할 때 미국 의회는 자유무역주의보다는 보호무역주의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예컨대 무역 협상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 미국 행정부는 의회로부터 신속절차권한(fast track authority)을 부여받아야 한다. 공화당과 민주당이 균점하고 있는 상원에서 이런 권한이 부여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은 무역 협상에 노동과 환경 문제가 연계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공화당은 정반대의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상원의 공화당 지도자인 트렌트 로트와 민주당 지도자인 톰 대슐은 물론 재무위원회의 중진인 척 그래슬리와 맥스 바쿠스 등이 자유무역 대신 소위 공정무역(fair trade)을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할 대목이다.

공정무역의 주장은 국제 무역이 규범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인데, 현실적으로는 종종 보호무역의 주장과 다름이 없다. 다행히 하원에서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공화당이 여전히 다소의 우위를 유지하고 있으나, 하원이 상원의 무역 제한적인 입장을 무마하는데 그렇게 효과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부시 당선자의 취임 이후 미국의 통상정책은 상원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이 팽팽한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합의를 이루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되고, 의회가 공정무역의 기치 아래 자칫 보호무역주의의 실현에 앞장설 가능성도 있다. 부시 당선자가 대통령 선거 유세에서 미국의 무역법을 강력하게 집행할 것을 천명한 것을 감안하면 21세기를 여는 미국의 통상정책은 한국 등 주된 무역 상대국에 상당히 부정적일 것으로 평가된다.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가장 중요한 대응 전략은 세계무역기구(WTO)를 중심으로 한 세계 경제의 개방에 적극적이며 능동적으로 앞장서 참여하는 것이다. 통상에 깊이 의존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해외시장의 개방은 우리의 생존 기반이기 때문이다. 또한 국내시장의 개방을 거부하지 말아야 한다.

이와 함께 우리 스스로 WTO의 국제 규범에 위배되는 정책을 수행하지 않으면서 미국은 물론 다른 국가들의 WTO 규범 위배 가능성을 끊임없이 감시해야 한다. 필요한 경우 WTO 분쟁해결 절차를 활용해 우리의 통상 이익을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 특히 미국 의회에서의 통상 관련 입법 동향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 의회에서 신속절차가 합의될 경우 반덤핑규정과 무역법 201조와 301조 등을 미국 기업에 보다 유리하도록 자칫 WTO 규범에 위배되게 개정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 내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인사들과의 연대도 필요하다.

결국 부시 정부의 통상정책을 잘 이해하고 극복하는 것이 21세기 한국 경제 성장의 기회가 될 것이다.

박노형 <고려대 통상법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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