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의 대중문화 째려보기]GOD와 인생

  • 입력 2001년 1월 12일 15시 03분


폭설이 쏟아졌습니다. 길은 빙판으로 바뀌었고 차들은 엉금엉금 거북이처럼 기어다닙니다. 국회의원들은 미끄럼을 타듯 이 당에서 저 당으로 옮겨다니고 그 위로 몇 년 전에 썼다는 안기부의 자금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습니다. 솔직히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닙니다. 그쪽이 코미디로 전락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음악채널로 시선을 돌립니다. 프라임 콘서트에 나온 동물원의 유준열님은 동물원에 자신의 인생을 걸었다면서 그 동안 동물원을 지탱시켜준 것은 바로 인간에 대한 믿음이라는군요. 인간에 대한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변치 않는 보편적인 심성과 원칙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요?

'바른생활형 가수' GOD의 노래들 가운데는 인간에 대한 믿음을 주제로 한 곡들이 있습니다. 작곡과 작사는 물론 박진영님이 했지만, GOD의 목소리와 춤에 실려 그 이미지가 증폭되는군요.

1집의 '어머님께'와 3집의 '촛불 하나'는 박준형님의 베이스톤이 감미로운 목소리에서 서로 만나는군요. '아버님 없이 마침내 우리는 해냈어 마침내 조그만 식당을 하나 갖게 됐어 그리 크진 않았지만 행복했어 주름진 어머님 눈가에 눈물이 고였어'(어머님께)의 그 청년이 곧 '기억하니 아버님 없이 마침내 우리는 해냈어 그건 나의 어릴 적 얘기였어 사실이었어 참 힘들었어 하지만 난 포기하지 않았어 꿈을 잃지 않고 용기를 잃지 않고 계속 노력하니 결국 여기까지 왔고 이제 너희들에게 말해 주고 싶어 너희도 할 수 있어'(촛불 하나)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성공한 것입니다.

편모슬하에서의 고난과 영광이란 컨셉은 무명의 GOD가 정글과도 같은 대중음악판에서 최고의 스타로 올라서기까지의 여정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는군요. 더운 물도 나오지 않는 곳에서의 합숙과 'GOD의 육아일기'를 통해 재민이를 키우며 보여준 인간적 매력까지 덧붙여졌네요.

그러나 '세상엔 우리들 보다 가지지 못한 어려운 친구들이 많습니다. 지금도 힘들어 하고 있을 그 친구들을 위해 이 노래를 부릅니다 힘내라 애들아'(촛불 하나)라고 노래를 시작할 때, 물론 이 부분은 박진영님과 GOD 맴버들의 진심이 녹아있겠지만, 한 줄기 걱정이 생기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는 GOD가 아이돌 스타에 머무르지 않고, 또한 박진영님에 의해 기획된 노래 잘 하고 춤 잘 추는 그룹에 머무르지 않고, 정말 인생에 대해 노래하는 뮤지션이자 가수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대를 뛰어넘어 사랑받을 수 있는 세련된 노래를 만든다거나 또 GOD를 좋아하고 따르는 청소년들에게 촛불 하나가 곧 온 세상을 밝히리라는 희망의 포즈를 짓는 대신 우리가 처해 있는 이 참혹한 현실에 대해서도 따져야 하지 않을까요?

꿈을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노력하며 서로 돕자는 차원을 뛰어넘어, 누가 우리의 꿈을 빼앗아갔는지, 또 누가 우리들의 어깨동무를 막았는지 밝히는 것, 인생의 쓴맛을 경험했다고 언급하지만 말고 그 쓴맛이 무엇이었는가를 묘사하는 것 말입니다. 서태지의 '교실이데아'나 크라잉넛의 '말달리자'에 담겨 있는 고통의 본질에 GOD도 접근했으면 좋겠습니다. 때로는 세상을 향한 공격과 분노가 희망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묶을 수 있는 튼튼한 동아줄일 수도 있으니까요.

사랑타령을 넘어 인생을 진지하게 탐색하는 GOD의 노래는 아름답습니다. 그 아름다움이 더욱더 깊어지기를 바랍니다. 낭만적인 위안만 해도 대단한 것이라고 논박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래도 아직 그들은 젊고 또 그만큼 많은 가능성을 지니고 있지 않나요? 인생역정 전체를 긍정적으로 아우르려는 노력도 소중하지만 부분의 상처를 선명하게 붙드는 지혜 역시 필요하겠지요.

이 밤, GOD의 '촛불 하나'를 들으며 창밖을 내다봅니다. 어둠에 잠긴 도심에서도 빛나는 하얀 눈. 지금은 비록 춥고 힘들지만 저 세상은 충분히 살 만한 것이겠지요?

소설가 김탁환(건양대 교수) tagtag@kytis.ko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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