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만우/‘과학농정’만이 농촌 살린다

  • 입력 2001년 1월 11일 18시 57분


최근 내린 폭설로 비닐하우스 재배 농민과 양계농민들이 시름에 잠겨 있다는 보도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돼지값 폭락으로 양돈 농민들의 주름살이 더욱 깊어졌는가 하면 최근에는 배추값 파값 폭락으로 이를 갈아엎는 사태가 많은 국민을 슬프게 했다.

▼한해 앞도 못봐 늘 농산물파동▼

그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말에는 10만여명의 농민이 전국에서 농가부채 해결을 위한 특별법 제정과 농축산물 가격보장 대책을 요구하며 고속도로를 점거하는 등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어느 분야에서나 크고 작은 문제점이 없을 수는 없지만 농업 분야에서는 이와 같이 바람잘 날이 없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과잉생산으로 인한 출하가격의 하락으로 산지의 배추나 파를 갈아엎거나 폐기처분하고 있다는 것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농산물 가격파동의 단적인 예로 우리 농정의 문제점을 여지없이 노정하고 있는 것이다. 전년도의 농산물 가격이 예년보다 높았다면 이를 근거로 대다수 농민은 경지면적을 늘려 과잉생산이 우려되고 그 이듬해에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 종래의 경험이었다. 고추 양파 마늘 파동에서부터 소값 돼지값 파동에 이르기까지 농정의 부재는 끊임없이 이어져 왔고 이런 실정(失政)이 농민들의 과격한 시위의 원인이 되고 있다.

과학적인 재배면적 추정에 기초해 농민들의 과잉생산을 사전에 방지했어야 할 당국의 행정이 그 첫번째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공급이 달리는 농산물은 마구잡이로 수입하고 공급이 넘치는 것은 갈아엎는 주먹구구식 농정으로는 디지털 시대의 농업선진화는 공염불에 불과할 것이다.

농협중앙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7월 말 현재 농가부채는 39조8000억원이란 천문학적 규모이다. 공기업과 사기업 정부부채 등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한국은 부채공화국이란 자조 섞인 비아냥을 받아 마땅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농가부채가 이미 농민의 상환능력을 넘고 있다는 점이다. 다행히 지난해 국회는 상호금융자금 10조원을 5년간 연이율 6.5%의 저리자금으로 대체해 주는 것 등을 골자로 한 ‘농어업인 부채 경감 특별 조치법’을 확정했다.

그러나 공적자금의 비효율적 관리 때문에 추가적인 공적자금이 투입되듯 주기적인 농가부채 탕감이라는 단골메뉴가 더 이상 등장하지 않도록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그 세부적 실천방안 또한 정부의 4대 부문 구조조정 작업과 동등한 비중으로 시행돼야 한다.

90년대 이후 농산물시장 전면 개방에 따른 대응책의 하나로 93년부터 98년까지 농어촌 구조개선을 위해 42조원이 투입됐으며 96년 이후 농어촌 특별세 재원으로 매년 1조5000억원이 투자돼 왔다. 이처럼 거액의 자금이 투입됐지만 역대 정권의 누적된 농정실패로 ‘복지 농어촌’이란 장밋빛 약속은 한낱 구호로만 그치고 빚더미 농어촌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농민들의 경영능력 부족에도 근본적 원인이 있지만 시장여건에 대한 충분한 대응책이나 중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계획 없이 농업경영의 규모확대와 시설화를 유도한 정부의 책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농가빚 악순환 근본대책 절실▼

과거 4반세기 동안 농업부문의 성장률은 경제성장률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연례 행사처럼 반복되는 농산물 가격파동, 소득증대와 농어촌 구조개선을 위한 예산의 비효율적 운용, 농협 등 농어민 관련 공공기관의 비생산적 경영, 누적돼온 농어가 부채 등 농업관련 문제는 도처에 깔려 있다.

기업부실에 따른 금융기관의 부실을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해 공적자금이 투입되듯이 농업과 농민을 부채의 악순환에서 구출하기 위해 농가부채 특별법 제정 등 특단의 조처가 요구된다.

그러나 추가적 공적자금 투입을 막아야 하듯 농가부채 탕감이라는 이례적인 조처가 더 이상 등장하지 않도록 치밀하고 과학적인 정책과 이의 차질 없는 실천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농업은 영원히 낙후될 수밖에 없다. 올해가 과학 농정의 원년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이만우(고려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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