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아뿔싸, 가짜주문" 멍드는 개미

  • 입력 2001년 1월 11일 18시 25분


작년 8월 18일 증권거래소 종목인 금양을 주시하던 A씨는 깜짝 놀랐다. 오전 9시 개장 직전 동시호가 매수잔량이 1700만주에 육박했기 때문이다. “사려는 투자자가 많으니 주가가 오를 것”이라고 판단한 A씨는 급하게 매수주문을 냈다.

게다가 금양은 8월 4일부터 7일 연속 상한가 행진을 했다. 이 기간 중 거래량은 최소 26만주에서 최다 217만주 사이를 왔다갔다했다. 이런 상황에서 매수잔량이 1700만주나 쌓였다면 다시 상한가에 들어갈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개장하자마자 매수잔량은 50만주대로 곤두박질했다. 금양의 당일 시초가는 4590원으로 전날 종가보다 12%나 뛰었다. 동시호가에 쌓였던 매수잔량에 영향을 받았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종가는 하한가인 3460원이었다.

A씨는 “속았다”고 탄식했으나 이미 늦었다.

거래소가 작년 9∼11월 특별감리를 실시한 결과 주식시장의 가짜주문(허수호가)의 문제가 예상보다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짜주문이란〓특정종목의 주가를 끌어올리려고 실제로는 살 생각이 없으면서도 다량의 매수주문을 낸 뒤 다른 투자자들의 주문이 잇따르면 곧 자기 주문을 취소하는 것이다.

거래소는 주문수량과 반복정도를 기준으로 허수주문 여부를 판단한다. 가짜주문은 데이트레이더가 사용하는 대표적인 방법이다. 감리 결과 데이트레이더 한 명이 하루에 1개 종목을 대상으로 144차례 주문을 한 사실도 드러났다.

▽가짜주문 실태〓전장과 후장 때 10분씩 있는 동시호가 때보다는 장중에 가짜주문의 92%가 나왔다. 대부분 30분 이내에 주문을 취소한다. 수십억원대의 잔고를 갖고 있는 거액투자자나 손놀림이 빠른 투자상담사들이 허수호가의 주역들이다.허수호가는 대부분 주가가 액면가 밑으로 거래량이 많은 종목을 노린다. 대체로 10여만주에서 1000만주까지 주문량이 나온다. 한빛은행은 건당 최대 350만주의 주문이 나왔고 900만주를 12번 나눠 주문하기도 했다.

▽가짜주문 관련자 처벌〓거래소는 리젠트증권에 경고를, 대신과 부국증권에 주의조치를 내렸다. 가짜주문인줄 알면서도 주문을 받아주었기 때문이다. 관련 임직원 8명에 대해서는 각 증권사에 처벌을 요구했다.

그러나 허수호가를 낸 사람들에 대해서는 조치가 없어 형평성 문제가 제기됐다. 주가를 조작해 이익을 얻었는데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것. 실제로 거래소가 5개 지점의 7명을 2개월간 표본조사한 결과 허수호가로 총 63억원의 이익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거래소측은 “증권거래법의 시세조종 조항이 허수호가가 생기기 전에 만들어져 허수호가자 처벌에 대해 법적 논란이 있다”고 말했다.

<이진기자>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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