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버티칼 리미트>죽음의 산 K2와의 사투

  • 입력 2001년 1월 8일 17시 20분


-죽음의 산 K2와의 사투 그린 산악 블록버스터 <버티칼 리미트>의 리뷰 2편을 함께 싣는다(편집자 주)-

리뷰 1.말 안 되도 재미있는 산악게임

<버티칼 리미트>는 영화라기보다 차라리 게임에 가깝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이지만 그것을 정복하는 데는 세계 최고의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는 K2. <버티칼 리미트>는 K2라는 험준한 산 안에 몇 명의 인간을 밀어 넣고 "능력 있으면 한 번 살아 나와 보라"고 놀리는 듯한 영화다.

오랫동안 인간의 발이 닫지 않는 땅이었던 K2는 인간을 동정하는 법 없이 생과 사의 극점을 노출한다. 영화는 이 극점에 발을 딛은 사람들이 어떤 어려움 끝에 낙오하고 살아남는지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살아남은 자는 자연과의 치열한 게임에서 보란 듯이 이긴 것이고 죽은 자는 게임의 명백한 낙오자가 되는 것이다.

사실 이런 식의 영화는 <버티칼 리미트>가 처음은 아니었다. 멀리는 <라이프 보트>와 <백경>이, 가까이는 <타이타닉> <퍼펙트 스톰> 등의 재난영화가 무수히 답습했던 이야기다. 자연과의 싸움에서 이긴 자는 인간과의 싸움에서 이긴 자보다 훨씬 강하다는 진리. 이런 이야긴 한마디로 감동적이다.

<버티칼 리미트>는 처음부터 운명의 결단을 내려야 하는 한 산악인 가족의 비극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아버지, 아들, 딸이 함께 K2를 등반하고 있을 무렵 사고가 발생한다. 로프엔 세 사람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고 절벽에 꽂아놓은 캠은 세 사람의 몸무게를 지탱해줄 힘이 부족하다. 이때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이 매달려 있는 로프를 자르라고 다그친다. "셋 다 죽을 거냐. 난 이대로 죽어도 좋다. 빨리 로프를 잘라!" 아버지의 다그침과 함께 아들은 아버지의 로프를 잘라버린다.

운명의 결단을 내렸던 아들은 그날 이후 산을 멀리하고 딸은 산악인으로 남는다. <마스크 오브 조로> <007 골든아이> 등을 연출했던 마틴 캠벨 감독은 이 사건을 극의 긴장감을 유지해줄 최적의 기폭제로 활용한다.

이 사건은 두 예비 산악인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았을까. 딸 애니(로빈 튜니)는 몇 년 후 아버지의 주검이 묻힌 K2에 재도전할 기회를 맞게 되고 아들 피터(크리스 오도넬)는 산악인이 아니라 <내셔널 지오그래픽>지의 사진 기자로 등반 길에 합류하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K2는 몇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호락호락하게 그들을 받아들여주지 않는다. 눈 폭풍이 등반대를 덮쳐 에바를 포함한 3명의 산악인만이 눈구덩이 안에서 간신히 목숨을 구제한다. 이들이 생존해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총 22시간. 산밑에서 등반대원의 동정을 살피던 에바의 오빠 피터는 "아버지에 이어 동생까지 K2에 빼앗길 수 없다"며 구조대원 파견을 서두른다.

3명을 구조하기 위해 6명의 구조대원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는 설정은 억지에 가깝지만, 어쨌든 이 영화는 '가족애' 라는 화두를 위해 그 정도는 눈감아 줘도 좋지 않느냐고 허풍을 떤다.

구조대원으로 파견된 인물의 면면은 특별하다. 아내를 K2에 묻었던 베테랑 산악인 몽고메리 웍(스콧 글렌), 산을 절친한 친구처럼 여기는 망나니 콤비, 애니의 오빠 피터, 간호사 모니크(아사벨라 스코럽코) 등.

3명의 조난자를 구하기 위해 결과적으로 죽는 사람은 총 6명이다. 이는 '라이언 일병'을 구하기 위해 8명의 구조대원을 파견했던 스티븐 스필버그의 악명을 연상시켜 얼핏 냉혹해보이기도 하지만, 리얼리즘과 드라마틱함을 아우르는 영화적 재미를 위해선 분명 현명한 선택이었다.

이 영화가 이런 몇 가지 치명적 약점의 방패막이로 활용한 것은 산에 뼈를 묻고 싶어하는 사람이나 산의 분노를 산 사람만을 죽음에 이르도록 만들었다는 것. 하지만 이것만으로 "에니 구하기 대작전"의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버티컬 리미트'는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수직한계점을 일컫는 말이며 산악인들에겐 '지옥'이란 의미로도 사용된다.

황희연 <동아닷컴 기자>benotbe@donga.com

리뷰 2. 필름으로 담아낸 최초의 K2 풍광 압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극한상황을 보여주기 위해 심해와 우주공간을 지나 무의식과 가상공간까지 헤집고 다닌다. 반대로 상상속 공간이 아니라 인간의 실제 경험치에 보다 가까운, 그래서 더욱 실감나는 현실공간을 찾아가기도 한다.

지난해 ‘퍼펙트 스톰’이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얼마나 아득한 공간인지 그렸다면 ‘버티칼 리미트’(Vertical Limit)는 반대로 까마득한 수직선상에서의 처절한 사투를 그려낸다. 전자가 광장공포증으로 접근했다면 후자는 철저히 고소공포증에 호소한 셈이다.

무대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 K2. ‘아무도 2등은 기억하지 않습니다’는 광고카피가 있지만 영화속에선 늘 K2가 에베레스트보다 더 유명하다. 2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갈 만큼 최악의 등정코스로 악명이 자자하기 때문.

영국의 억만장자 모험가 엘리엇 본(빌 팩스턴)은 이 저주받은 산에서 대형 이벤트를 준비한다. 한차례 K2등정에 실패한 경험이 있는 그는 자신 소유의 항공사에서 첫 취항한 비행기를 K2에서 맞이하겠다며 300만달러를 들여 전세계 유명 산악인들을 불러들인 것.

하지만 갑작스런 기상이변으로 본과 여성 등반가 애니(로빈 튜니) 등 선발대 3명이 정상 바로 아래서 조난 당한다. 생명체가 살 수 없다는 뜻에서 수직한계점(버티칼 리미트)이라 부르는 7200m이상의 고지대에서 물 없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12시간 안팎. 24시간분의 물을 지닌 애니 일행에게 남은 수명은 36시간이다.

본의 회사에선 이들의 구조에 300만달러를 내걸고 애니의 오빠 피터(크리스 오도넬)는 전설적 등반가 몽고메리 윅(스콧 글렌) 등 다른 산악인 5명의 도움을 받아 구조에 나선다. 피터는 과거 암벽등반 중 애니와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아버지의 자일을 끊어야했던 아픈 기억이 있고 윅 역시 K2에서 아내를 잃은 상처가 있다.

설상가상으로 이들은 애니 일행이 갖힌 얼음계곡을 폭발시키기 위해 액체상태의 폭발물, 니트로그리세린까지 짊어지고 암벽을 오른다.

영화의 사실감을 높이기 위해 등반장면은 K2와 가장 흡사한 뉴질랜드 북쪽 쿡산에서 찍었다. 대신 배경의 대부분은 별도의 촬영팀이 4200m지점까지 진짜 등정을 감행하며 35㎜필름으로는 최초로 담아낸 실제 K2의 모습이다.

‘마스크 오브 조로’와 ‘007 골든아이’의 마틴 켐벨 감독은 ‘클리프 행어’의 절벽타기로도 부족해 ‘스피드’의 시한폭탄까지 도입해 현란한 곡예를 펼쳐보인다. 하지만 영화속에 겹겹이 포개진 섬세한 드라마를 살리는 데는 아쉽게도 실패했다. 그래서 배우들의 연기는 풍경에 압도당하고 구조대가 정상 가까이 다가갈수록 극적 긴장감이 처진다. 13일 개봉. 12세이상 관람가.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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