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란의 시대가 가자 바둑은 평화를 상징하는 국기로 장려되었다. 혼인보(本因坊) 같은 바둑명가가 나오고 1644년에는 어성기(御城碁)라는 것이 제도화되기도 했다. 혼인보 기전은 오늘날까지 일본의 3대 기전의 한 타이틀로 살아 있다. 이처럼 바둑이 앞선 일본이기에 자연 중국인(吳淸源) 한국인(趙南哲) 기재(棋才)들이 거기서 바둑을 익혔다.
▷조남철 국수이래 김인 조훈현도 일본 유학파로 실력을 떨쳤다. 이어 ‘순국산파’ 서봉수 유창혁 이창호 등 빛나는 스타들이 그 뒤를 떠받쳤다. 조훈현을 포함한 ‘4인방’은 세계 대회 타이틀을 번갈아 석권해 바둑강국 한국을 과시했다. 그사이 일본에서는 조치훈 조선진 유시훈 같은 한국 출신이 일본 기전을 쥐고 흔들었다. 그 바람에 일본의 바둑붐이 식어버렸다고 할 정도다. 아닌게 아니라 일본의 프로기사 수는 450여명, 연구생은 50여명인데 지원자가 줄고 있다.
▷한국은 대조적이다. 한국은 프로기사 170여명에, 연구생 수도 그 정도다. 연구생 대기자도 100명에 이르러 바둑층은 두꺼워지고 있다. 중국은 프로(전업기사) 200여명에 저단진 예비군이 약 120명. 한국의 상승무드와 바둑붐을 보여주는 통계다. 그러나 한국은 지나치게 4인방에게만 기댄다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 비금도가 낳은 천재소년 이세돌(17)이 천원전 석권에 이어 유창혁을 꺾고 배달왕 타이틀을 따냈다. 목진석(20)도 이창호를 누르고 KBS바둑왕전을 손에 넣었다. 한국 바둑의 앞날에 찬연한 빛이 드리우는 것인가.
<김충식논설위원>seesch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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