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민주화 운동' 보상은 급한데… 성격규정-증거조사 진통

  • 입력 2000년 12월 22일 18시 47분


《1969년 3선개헌 반대투쟁 이후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피해를 본 사람들의 명예회복 및 보상을 위한 심의가 난항을 겪고 있다.

‘민주화 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심의위원회’(위원장 이우정·李愚貞)에 명예회복 및 보상을 신청한 사례는 총 8440건. 그러나 22일 현재까지 54건(44건은 민주화운동 인정, 10건 불인정)만 처리됐다.

심의가 이처럼 더딘 것은 관련법에 민주화운동의 정의가 ‘권위주의 통치에 항거하고, 민주헌정질서 확립에 기여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 신장시킨 활동’이라고 포괄적으로 규정돼 있어 개별 사안에 대한 판단이 쉽지 않기 때문. 또 10년 이상 오래된 사건이 많은데다 신청자의 민주화운동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자료도 부족해 심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화 운동 성격규정 고민〓서울의 H사 노조원 10여명은 94년 임금인상 및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회사측과 단체협상을 하던 중 폭력사태가 발생해 형사처벌을 받고 해직됐다. 이들은 “공권력의 개입으로 정당한 노동운동이 방해받고 형사처벌까지 당했다”며 명예회복과 보상을 신청했다.

그러나 위원회측은 노사간 단체협상 과정에서 발생한 사안을 과연 민주화운동으로 볼 수 있느냐를 놓고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민주화운동의 개념과 기준이 구체적으로 마련되지 않아 심사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위원회측의 설명.

일례로 김영삼(金泳三)정부 때 농민들이 우루과이라운드(UR)가입 반대투쟁을 하다 처벌받았거나 철거민들이 도시계획법에 의해 진행된 철거 반대투쟁을 하다가 구속된 것을 과연 민주화운동으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또 반국가단체나 이적단체로 규정된 일부 단체 회원들이 자신들의 과거활동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해달라고 신청해 위원회측이 난감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위원회측은 3선개헌 및 유신반대 투쟁 등 헌정사적으로 명백히 민주화운동으로 규정된 사건부터 심의를 하고 있다는 것.

▽조사의 어려움〓김모씨(49)는 85년 평소 알고 지내던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당시 비서 노모씨에게 “DJ가 아무리 핍박을 받아도 굴하지 말고 민주화투쟁을 계속해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가 우편검열에 걸려 경찰에 연행됐다. 김씨는 경찰관의 구타와 고문으로 부상을 당했고 직장에서도 쫓겨났다며 보상을 신청했다.

그러나 위원회의 조사 결과 노씨가 문제의 편지를 받지 않았으며 김씨를 연행한 경찰관도 구타한 기억이 없다고 주장했다. 김씨의 전 직장간부도 “당시 김씨가 가(假)입사 상태였는데 신원조회에 걸려 입사가 안된 것”이라며 해직사실을 부인했다.

김씨는 하루빨리 심의를 끝내달라고 요구하고 있으나 김씨의 부상이나 해직을 입증할 자료가 없어 심의는 계속 지연되고 있다. 더구나 DJ에게 편지를 보낸 행위를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해야 하느냐도 논란이 되는 대목.

명예회복 및 보상을 신청한 사람 중 상당수는 수사기관 등에 연행 구금 구속됐으나 이를 입증할 자료가 남아있지 않은데다 부상을 당했더라도 병상 및 진료기록도 보관돼 있지 않아 입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자신의 행위를 입증해줄 보증인을 세울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다는 것.

▽개선방안〓민주화운동 관련단체나 전문가들은 국회에서 관련법을 개정해 민주화운동 개념이나 이를 입증할 방법 등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하든지, 아니면 위원회에서 사건별로 민주화운동 여부를 먼저 판단한 뒤 개별사안을 심의토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위원회 자체적으로 민주화운동 입증자료가 없을 경우 어느 선까지 인정할지에 대한 기준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기대기자>k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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