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칼럼]박승관/의견보도 지나치면 곤란

  • 입력 2000년 12월 15일 18시 57분


한국은 ‘의혹(疑惑)’의 사회이다. 국가 전체가 장막 배후의 은밀한 숨은 거래와 담합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또한 의혹은 만발하되 그에 대한 해명은 없다. 의혹사건은 시작은 있고 끝이 없다. 오히려 더 큰 의혹들만 남기고 미궁 속으로 잠식한다. 그리하여 새천년의 새벽은 밝은 지 오래건만 한국은 여전히 암흑의 사회로 남아 있다.

금주의 지면도 ‘서울경찰청장 학력 허위기재 사건’ ‘청와대 총기사고 조사 의혹사건’ ‘제일화재, SKM 등 부실기업 대주주 재산도피 의혹사건’ ‘총풍사건 1심판결’ ‘한나라당 차기 대통령 선거 대비 문건 사건’ 등 각종 의혹사건 관련 기사들로 얼룩졌다.

의혹사건에 관한 한국 언론의 보도방식은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을 보이고 있다. 즉 언론은 사건 발생단계에서는 각종 의혹을 앞장서서 제기하면서 과도할 만큼의 관심을 보인다.

이 단계에서 언론은 국가 공식 수사기관들의 실질적 지휘기관에 상응하는 강력한 힘을 행사한다. 반면 사건의 진행 및 종결단계에서 한국 언론의 관심은 급랭해 소멸하고 만다. 이런 경향은 외국언론이 일반적으로 사건의 초동수사 단계, 법원 심리과정, 그리고 궁극적 해결과정에 지속적이고 균형 있는 관심을 할애하는 것과 매우 대조적이다.

가령 한나라당 문건 사건은 언론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3일자 A1면과 A4면 관련기사는 사건에 대한 개략적 소개와 14일자 사설에서의 언급 이후 추적하지 않았다. ‘총풍사건’에 관해서도 사건 초기에는 배경 의혹이 상세하게 제기됐지만, 1심 판결(12일자 A1, A3)에 이르기까지 언론은 그에 상응하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청와대 총기사고 조작 의혹사건’(14일자 A1, A2면)에 관해서도 15일자 A30면의 ‘경찰 사건 발생장소 왜 말 바꿨나’ 기사에서 의혹을 제기했지만 단발성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동아일보는 유야무야 미궁 속으로 사라져 가는 의혹들을 끝까지 밝혀내는 일관성을 보여주기 바란다.

반면 최근의 한국 언론은 지나칠 정도로 자기 의견이 강하다. 사실 보도보다 의견 보도가 강조되고 있다.

이런 경향은 특히 정치 관련 보도에서 심하다. 가령, 동아일보는 15일자 A1면에서 ‘언행일치 리더십 회복 국정 기본틀 다시 짜야’ 한다는 의견을 머리기사로 싣고 있다. 마찬가지로 9일자 A3면의 ‘가신정치 장막 걷고 눈귀 열어라’와 15일자 A2면의 ‘대통령부터 변해야 한다’는, 국민이 바라는 국정개혁을 위해 각계의 의견을 수합하는 형식을 취하기는 했지만 실제적으로는 동아일보 자체의 의견을 기사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의견 보도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으나 지나쳐서는 안된다고 본다.

반면에 15일자 A1면과 A3면에 보도된 “정권 따라 검찰요직 춤췄다”는 기사는 동아일보 자체 분석자료를 바탕으로 역대 검찰 인사의 문제점을 심층 보도한 수작으로 볼 수 있다.

박승관(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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