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펠드스타인교수"경제개혁은 시장기능 회복부터"

  • 입력 2000년 12월 11일 18시 58분


“한국이 경제 기반을 탄탄히 하려면 금융구조를 선진화해야 한다. 정부가 은행을 지배하면 안 되고 은행은 시장 원리에 따라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 특히 금융분야에서 외국 자본을 좀더 과감히, 적극적으로 유치해야 한다. 물론 돈도 들어오겠지만 앞선 금융기법을 습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마틴 펠드스타인 미국 하버드대 교수(사진)는 11일 “97년 외환 위기를 겪은 뒤 한국 정부는 경제를 회생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하지만 궁극적으로 경제개혁이 성공하려면 정부기능은 한계가 있으므로 시장이 제 기능을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거시경제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펠드스타인 교수는 미국 레이건 행정부 시절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을 지내면서 90년대 미국경제의 장기호황 기틀을 다진 것으로 평가받는 인물.

12, 13일 전경련 주최 국제자문단 학술회의 참석차 내한한 그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한국 경제는 지난 3년간 매우 빠르게 회복됐으며 한국이 다시 위기에 빠질 징후는 지금 시점에서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97년 동남아 외환위기 이후 3년이 지났다. 한국 경제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내가 보기에 한국은 애초에 위기가 발생할 이유가 없었다. 경제 여건이 동아시아권의 다른 나라와는 달랐다. 이제 경상수지가 꾸준히 흑자를 내고 있고 단기외채도 크게 줄었다. 적어도 올해와 내년에 위기가 일어날 요인은 없다.”

―한국에서는 금융개혁이 핵심이슈 중 하나다. 정부는 서두르지만 노조 등 이해당사자의 반발이 거센데….

“한두개 은행이 해외에 팔린 것을 빼고는 한국의 금융 구조조정은 별 진척이 없다. 정부가 은행을 사실상 소유하는 게 문제다. 기업이 정부 입김을 받지 않아야 하는데 정부가 은행을 좌지우지하는 한 이는 불가능하다.”

―금융 선진화는 어떻게 이뤄야 하나.

“한국은 유능한 엔지니어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 분야에서는 그렇지 않다. 정부 개입에 익숙해진 탓에 대출 심사와 리스크 평가, 전략적 의사결정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외국 금융기관보다 경쟁력이 떨어진다. 국제 자본시장과 호흡을 함께 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외자유치는 국부유출’이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은데….

“외국 자본이 금융업에 진출하면 단순히 돈만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금융 전문가와 선진기법, 다양한 경험이 함께 들어온다. 한국의 금융종사자들은 굳이 외국에 나갈 필요 없이 국내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이 경험을 한국내의 다른 금융기관으로 전달할 수도 있다.”

그는 “내가 만약 한국의 교수로서 여윳돈이 있다면 한국 기업 외에 외국계 뮤추얼펀드에 투자를 분산시켜 리스크를 낮출 것”이라며 “마찬가지로 외국에도 포트폴리오(자산구성) 차원에서 한국에 투자하려는 수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최근 경제주체들의 불안심리로 인해 소비와 투자가 함께 위축돼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하자 그는 레이건 행정부의 정책이 한국에도 참고가 될 것이라며 자세히 소개했다.

펠드스타인 교수는 당시 미국 정부의 성공비결로 △인플레 억제 △세금 감면 △과감한 노동개혁 △정부의 시장불개입 원칙 등 네 가지를 꼽았다.

“인플레 억제에 주력해 한때 두자릿수로 치솟았던 물가상승률을 2.5%로 떨어뜨렸다. 세금감면 정책을 펴 한때 최고 50%에 이른 소득세율을 86년 28%까지 낮췄다.”

특히 노동개혁과 관련해 “‘노조가 경제성장에 장애가 되는 일이 절대로 없도록 한다’는 원칙을 지켰다”고 강조했다.

그는 로런스 서머스 현 재무장관과 공화당 부시후보 캠프의 경제학자인 로런스 린제이 등 민주 공화 양당의 핵심 경제전문가들이 박사논문을 쓸 때의 지도교수. 제자들의 활약상에 대한 소감을 묻자 “교수로서 두 ‘래리’(애칭)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흐뭇해 했다.

―내년에 미국 경제가 경착륙(하드랜딩)할 것이라는 우려가 큰데…. 내년 세계 경제를 어떻게 전망하는지.

“생산 판매 고용이 침체에 빠지는 전통적 의미의 불황(Recession)은 없을 것이다. 미국은 급격한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금리를 인하할 여력이 있으며 재정도 비교적 건실하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가 올해처럼 호황을 누리기는 힘들겠지만 그렇다고 걱정하는 것만큼 심각한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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