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영언/영화보는날

  • 입력 2000년 11월 30일 18시 58분


‘영화보는 날’이 생겼다. 영화인들은 매달 마지막주 화요일, 또는 수요일을 이 날로 정하고 11월28일 첫 행사를 가졌다. 하지만 행사의 중심이 관객이 아니라 문화관광부장관과 영화인들이라는 점에서 다소 실망스러웠다. 앞으로 이 행사는 성장하는 한국영화의 성과를 일반관객에게 돌려준다는 점에서, 또 적극적으로 새로운 영화관객을 창출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몇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아야 한다.

▷사실 외국에는 이런 날들이 많다. 호주의 경우 화요일은 ‘영화의 날’이다. 이날은 모든 사람이 절반의 값으로 영화를 볼 수 있다. 70년대 초반 시작된 ‘영화의 날’은 TV의 등장으로 벼랑 끝에 몰렸던 영화계가 불황타개책으로 마련한 제도. 일주일 중 영화관람객수가 가장 적은 날을 잡아 ‘영화의 날’로 삼았다. 아이디어는 적중했다. 화요일 극장가는 할인요금을 즐기는 영화팬들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연인들은 아예 퇴근길 약속을 극장가로 정해 영화를 보며 데이트를 즐겼다.

▷이뿐만이 아니다. 영화의 날이 성공하자 박물관 연극전용극장 관광업계 스포츠경기장까지 가세해 각자가 편리한 요일을 잡아 ‘박물관의 날’ ‘연극의 날’ ‘역사기행의 날’ 등을 만들었다. 역시 대성공을 거두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날들의 제정이 숨어있는 고객을 적극 창출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평소 어떤 분야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날’이 되면 뭔가 의무감에 사로잡힐 것만 같다. “오늘은 역시 거기에 가봐야겠지”하고….

▷한국의 문화현실은 아직 척박하다. 잘 나가는 몇몇 영화를 빼면 대부분의 극장이나 공연장은 썰렁하기 그지없다. 문화인들은 “정부지원이 너무 없다”거나 “한국은 정말 안돼”만을 외치며 실망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적극적으로 관객을 찾아 나서야 하지 않을까. 이 방법의 하나로 월요일은 ‘연극의 날’, 화요일은 ‘음악의 날’, 토요일은 ‘책사는 날’하는 식으로 요일별 특화를 하면 어떨까. 무용 국악 미술 등도 마찬가지다. 요일별이 어렵다면 한 달에 한번 정도도 좋다. 그날만은 대폭 할인된 값으로 문화를 세일하자.

<송영언논설위원>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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