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준 칼럼]DJ, 핵심부터 때려야

  • 입력 2000년 11월 29일 23시 31분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된 때로부터 겨우 7주일이 지났다. 노벨상 모든 분야를 통틀어 우리 민족으로서는 처음인 영예로운 수상인 만큼 축제의 분위기는 이 시점까지도 계속될 만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제는 시상식 참석 여부가 공개적으로 시빗거리가 될 정도로 그 빛은 너무 빨리 바래버렸다.

여론의 큰 물줄기가 김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과 결과에 깊은 의문을 갖게 돼 버렸기 때문이다. 여당 수뇌부에서 당정쇄신론이 공식화된 사실이 그 점을 말해준다. 서영훈 대표최고위원 스스로 민심이 정부와 여당으로부터 많이 떠나 정기국회의 폐회를 계기삼아 당정 모두에서 인사를 개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공언하고 있지 않은가.

민심이 어찌하다 이렇게까지 악화됐는지 참으로 개탄스럽다. 어제 저녁 귀국한 김대통령 스스로 착잡할 것이다. 객관적으로 말해, 그는 대통령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정치가이다. 민주화를 개시시키고 진전시키기 위해, 그리고 평화통일에 큰 길을 열기 위해 미래지향적 경륜과 자기희생적 용기로 수십년 동안 일관되게 싸워왔다. 이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데 어째서 세계적 명망의 정치가가 이끄는 정부와 여당에 대한 비판은, 아니 국정운영 전반에 대한 불만은 이다지도 높은가?

정부의 핵심인사들은 우선 이 정권의 어떤 실수들과 과오들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책임을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고질적 지역패권주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소수정권으로, 또는 공동정권으로 출발할 수밖에 없었던 이 정권에 대한 생래적 반(反)DJ 계층과 지역의 비협조와 딴죽걸기가 이 정권을 어렵게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특히 이 정권의 개혁정책에 대한 기득권세력 또는 수구세력의 반발이 여론을 그릇된 방향으로 유도했다고 변명하면서 억울해하기까지 한다.

DJ가 하는 일이라면 아무리 잘하는 일이라도 점수를 주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음을 필자도 인정한다. 심지어 DJ가 잘하면 잘할수록 보기 싫다고 말하는 사람들조차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과연 그것들만이 민심이 흔들리게, 심지어 이 정권으로부터 떠나게 만들었을까? 좀더 객관적이 되기 위해 좌우사방을 돌아보며 물어보아도 대체적인 대답은 ‘아니올시다’이다.

다수의 여론은 그동안 일어난 여러 대형 의혹사건들을 보면서 이 정권 역시 지난 정권들처럼 부패했다고 의심하게 됐는데, 정부와 여당은 그 의심을 풀어주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지난해의 옷로비사건은 더 이상 말하지 않기로 하자. 최근에만 해도 벌써 두 차례나 큰 금융사건이 발생했건만 시원한 설명 없이 수사결과는 사실상 흐지부지였다. 권력층에 대한 수사는 덮어버리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우물우물 마무리짓고 말았다는 느낌을 평범한 국민들조차 갖고 있다. 도대체 문제의 진승현씨를 잡으려고나 하는 건가? 잘 숨어서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건가? 수사의 의지는커녕 체포의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분개한다.

내각의 존속을 위협할 만큼 폭발력을 지닌 대형 부정부패 사건들에 대해 제대로 수사가 되지 않는 것을 계속해서 보게 되자 세론은 이 사건들의 배후에 이 정권의 실세들이 개입되어 있다는 의심을 더욱 굳히게 됐다. 사회심리적 분위기가 이렇게 형성되면서, 그동안 업계에서만 쉬쉬하고 돌던 안 좋은 소문들이 공공연하게 시정(市井)의 대화에 오르내린다. 수도권은 물론 지방 도시들의 이권에도 몇몇 실세들이 개입해 얼마씩 챙겨왔다는 얘기가 실감나게 유포된다. 그러니 어찌 사정(司正)의 영(令)이 설 수 있겠고 당정쇄신의 발언이 기대를 불러일으킬 수 있겠는가. 정식으로 창당된 지 1년도 안된 ‘새’ 정당에 ‘쇄신’이 거론되는 것 자체가 우습지 않은가. 쇄신이라고 해야 또 그 얼굴이 그 얼굴일 것이라는 냉소가 앞서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자조(自嘲)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렇게 하기에 시국은 너무 어렵다. ‘제2의 경제위기’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글자 그대로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것은 정권의 중심부, 권력의 핵심부터 철저히 살펴서 잘라낼 것은 잘라내고 내보낼 것은 내보내고 벌줄 것은 벌주는 일이다. 탄핵파동의 가운데 서게 됐었던 검찰총장과 대검차장의 진퇴에 대해서도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핵심부터 때려라. 그래야 민심은 비록 돌아서지는 않는다고 해도 비로소 정부와 여당의 다음 행보에 관심을 돌릴 것이다.

김학준(사편집·논설상임고문)ha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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