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담론]대학원 붕괴 누구탓이오?

  • 입력 2000년 11월 27일 18시 47분


아름다운 시장의 황금률이 구현된 듯한 경쟁률 ‘1.0 대 1’. 최근 마감한 2001년 서울대 박사과정 정시모집의 경쟁률이다. 역대 최저 경쟁률이란다. 서울대에서 이런 상황이 나타났으니 화제가 되고는 있지만, 사실상 국내 대학원의 미달 사태는 별달리 새로운 일도 아니다. 십여 년씩 학문을 해 봐야 오갈 데도 없는 현실, 더구나 국내 학위로는 발붙일 곳조차 거의 없는 상황에서 서울대 대학원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수요와 공급 중 한 쪽이 일방적으로 줄어드는 상황에서 ‘1.0 대 1’이 됐다면 이 시장은 붕괴 중이다.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사람들이 잠시 머물다 물만 흐려놓고 떠나기에 딱 알맞은 시장 조건이다.

요(堯)와 순(舜)으로부터 약 4300년, ‘오디세이’의 저자라는 호메로스로부터 약 2800년, 서양 최초의 철학자라는 탈레스로부터 약 2500년, ‘역사의 아버지’라는 헤로도투스로부터 약 2400년, 분과 학문의 기초를 만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2300여 년….

◇박사 돼도 갈곳 없는 현실◇

기나긴 역사의 경험에서 축적된 지식을 익히고 이를 바탕으로 당대의 문제의식 속에 고뇌하며 인류의 지적 보고에 벽돌 한 장을 얹는다는 것. 이것은 도대체 높은 생산성을 요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렇게 비효율적인 일은 다시 찾기도 힘들 정도다. 이런 영역이 시장의 논리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졌을 때 나타나는 현상은 당연히 ‘붕괴’일 수밖에 없다.

물론 고급 실업자를 양산해 내는 것이 한국 대학원의 현실이고 보면 대학원 체계의 붕괴는 당연한 일이다. 대학원은 사회 전체 인력 구조의 개편과 함께 근본적으로 수급을 조절해야 할 대표적 인력시장이다. 그러나 이는 더 나은 인재 양성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지원책 마련을 필요로 하는 것이지 일률적으로 시장의 논리에 맡겨질 일은 아니다. 자본주의 시장의 원리가 끊임없이 수정을 계속해 온 이유는 바로 시장의 원리가 적용될 수 없는 영역, 하지만 인간적 삶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영역이 이 사회 곳곳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자기성찰을…◇

우수한 인력이 머물 수 있는 어떤 조건도 마련되지 않은 교사의 현실에서 이미 초중고의 교육체계 붕괴는 시작됐고, 이 상황이 대학과 대학원에서도 똑같이 재현되고 있다. 인간 스스로의 존엄성을 잊은 채 동물적 본능이 만연하고 있는 거리의 현실은 바로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공자는 법과 형벌을 최악의 정치 수단으로 여겼다. 최상의 정치는 교육을 통한 심성의 교화에서 시작되고, 거기에는 반드시 우수한 인재들로부터 선발된 훌륭한 스승이 있었다.

또한 역사의 경험을 기억한다는 것, 그리고 이를 기억하는 사람을 계속 생산해낸다는 것. 이를 제외하면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나아질 이유는 별로 없다. 학문은 인간이 살아 온 삶을 반성하며 매일 부딪히는 일상에 대한 반복적 질문 던지기. 학문은 남들이 당연하다고 믿는 것들에 대해 끊임없는 의심하는 것이다. 이 질문이 끊길 때 인간의 조건도 무너진다. 그 기나긴 싸움, 진리와의 싸움은 결국 인간이 인간임을 재확인하는 자신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주역(周易)’의 복괘(復卦)는 흥망의 반복 속에서 새 생명이 자라나며 새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이 자연과 사회의 이치임을 알려준다. 그러나 이미 인재가 소통되지 않고 벗이 외면하는 곳이라면 새 생명도 시들어 가기 마련이다. “복(復)은 형통하니, 출입에 막힘이 없어서 벗이 와야 허물이 없다(復亨, 出入無疾, 朋來无咎).”(주역 중에서)

<김형찬기자>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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